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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이 과학혁명을 이끌었다

등록 2006-03-16 21:34수정 2006-03-17 16:39

지식의 증류-연금술, 화학, 그리고 과학혁명<br>
브루스 T. 모런 지음. 최애리 옮김. 지호 펴냄. 1만8000원.
지식의 증류-연금술, 화학, 그리고 과학혁명
브루스 T. 모런 지음. 최애리 옮김. 지호 펴냄. 1만8000원.
‘뉴턴 이전과 뉴턴 이후.’

흔히 과학사를 가르는 이분법적 기준이다.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았듯 근대과학도 돌연 미몽에서 깨어나 이성의 승리를 얻은 것인가. 후세 사람이 붙힌 ‘과학혁명’이란 헌사는 과거 방법론과의 지속성에 단절을 고한다. 그러나 과학의 진보는 예외적인 천재들에 의한 혁명적 사건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점진적인 변화들의 축적이다. 온전히 새로운 구조의 과학이 이식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얘기다.

네바다 대학 역사학 교수이자 과학사가인 브루스 모런은 <지식의 증류>(지호 펴냄)에서 단순 이분된 과학사의 균열을 메우고자 한다. 16~17세기는 다양한 자연관이 공존했고 그 중심엔 연금술이 있다, 나아가 연금술이야말로 과학혁명을 이끌었다는 주장이다. 과학자들의 방대한 저작을 분석하며 “연금술과 과학은 얼핏 미신과 이성이라는 대립항처럼 보이지만 상호의존적이었다”는 사실을 실증한다.

‘일정 온도에서 기체의 압력과 부피는 서로 반비례한다’는 보일의 법칙으로 유명한 화학자 로버트 보일이 당시 내놓은 ‘입자설’은 수백 년 전통을 다듬어 근대적 발상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건 일례다. 일찍이 금속이 유황과 수은이라는 소립자로 이뤄져 있다는 가설은 연금술사들이 고찰한 바 있다는 것이다. 모런에 따르면, 자연철학의 사고방식을 전복한 뉴턴의 ‘만유인력’도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세계관에 뿌리박고 있지 않다. 뉴턴은 고대, 중세, 그리고 당대의 권위 있는 연금술 저자들의 글을 베끼고 인용하면서 연금술의 지혜를 탐했기에 ‘만유인력’의 고갱이에는 다양한 물질이 융합하고 분해되는 연금술의 생기론적 영감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연금술은 점차 화학으로 진화해가면서 ‘사이비 과학’이라는 불미스런 짐들을 덜어내야 했다. 16세기 말 최초의 화학 교과서로 매김한 안드레아스 리바비우스의 저술 <연금술>에서 그는 어떤 사상이 이성과 경험에 기초해 있으며 어떤 사상이 검증되지 않고 사기성이 있나 구분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헛소리 취급당하던 연금술은 천시를 딛고 1616년 키미아트리(chymiatry)란 이름으로 대학 교과과정에 편입된다. 이무렵 연금술과 화학이란 용어는 혼용됐지만 “물체들을 용해시키는 법, 다양한 성분을 추출하는 법, 그것을 다시 결합시키는 법”과 같은 실험과정을 점차 화학으로 지칭하며 황금을 만드는 일에 열중했던 협잡꾼으로 의심받았던 연금술과 분리를 꾀한다.

저자는 그러나, 단지 연금술의 추출물이 화학임을 말하려 하진 않는다. 과학이란 인간적인 것이고 과학혁명은 합리성으로 포장된 깔끔한 범주를 넘어 마술, 비의 등 불순함이 섞인 잡탕임을 말하려 한다. “자연지식에 대한 기계적이고 수학적인 접근의 우월성만을 강조한다는 것은 그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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