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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장관 누워서 침뱉나…양서구매 ‘세종도서 사업’ 때리기, 왜?

등록 2023-05-25 07:00수정 2023-05-25 09:39

양서 출판계 산소호흡기 구실…틀 짠 것도 문체부
공정성 문제 들어 “수술” 천명…예산삭감 빌미 우려
문체부가 최대 규모의 출판 지원 사업인 세종도서를 “구조적인 수술”에 나서겠다고 밝혀 출판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문체부가 최대 규모의 출판 지원 사업인 세종도서를 “구조적인 수술”에 나서겠다고 밝혀 출판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출판 지원 사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세종도서 선정·구입 지원사업’(세종도서 사업)의 올해 시행을 미룬 채 “부실투성이 운영” 등의 이유로 이 사업 ‘때리기’에 나서, 정부가 이를 빌미로 예산 축소 등 출판 지원을 줄이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행 세종도서 사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출판진흥원)이 맡아 ‘민관 협동’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이 틀을 만든 것은 문체부여서 ‘누워서 침 뱉기’란 지적도 나온다.

세종도서는 정부가 교양부문(550종)·학술부문(400종)으로 나누어 양서를 선정해 국고로 이를 구매해주는 사업으로, 지난해 기준 한 해 84억원 규모로 운영되어 왔다. 이같은 ‘도서 구입’ 방식은 출판산업 진흥보다는 도서관·독서 진흥 정책에 가깝지만, 별다른 출판산업 진흥 정책이 없기 때문에 출판계는 이 사업에 크게 의존해왔다. 올해 들어 별다른 설명 없이 사업을 지연시키던 문체부는 지난 21일(일요일) 보도자료를 내어 “세종도서 선정 사업이 부실투성이로 운영”되고 있다며 “사업의 구조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박보균 장관)고 밝혔다. 문체부는 세종도서 사업을 자체 점검한 결과 “객관성·공정성의 핵심인 심사기준 배점표·채점표가 부재”하고 “특정 단체 추천인이 과도하게 반영”되는 등 심사위원 구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출판계에서는 문체부가 결국 출판 지원 자체를 축소하려는 게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는 이틀 뒤 성명을 내어 “세종도서 사업의 문제 지적이 예산 축소의 빌미로 전락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문체부가 대안을 논의하기보다 현행 제도 ‘때리기’에 앞서고 있는데, 세종도서 사업을 흔들어 출판 지원 자체를 축소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출협은 “세종도서 사업이 부실 운영되고 있다면, 그 상황을 만든 데에는 문체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누워서 침 뱉기’라는 것이다. 정부의 양서 선정·구입 사업을 두고 그동안 적절성이나 객관성·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없지 않았는데,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그 정점을 찍었다. 정권 윗선의 지시로 특정 작가나 도서를 지원 사업 등에서 배제하는 일들이 벌어졌고, 출판계의 경우 세종도서 사업이 그 수단이 됐던 것이다.

결국 ‘블랙리스트’ 사건은 박근혜 정권 탄핵 사유가 됐다. 정권이 바뀐 뒤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는 출판진흥원에 문제가 된 세종도서 사업을 “민간에 위탁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문체부는 이를 거부하고 세종도서 사업의 제도 개선 및 운영 전반을 관장하는 ‘세종도서 운영위원회’를 출판진흥원 내부에 설치하는 ‘민관 협동’ 방식을 택했다. 출협은 “현재의 세종도서 사업의 운영방식, 체계, 심사방식은 모두 그 당시 문체부가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2022년 세종도서 사업 현황.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누리집 갈무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세종도서는 출판진흥원이 위촉한 심의위원들이 ‘사전검토→1차 심사→2차 심사’하는 방식으로 책을 선정해 도서관 등에 보급한다. 애초 문체부는 심의위원들이 책을 직접 ‘선정’하는 대신 ‘추천’하고 각 도서관이 책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세종도서 사업 방식을 바꾸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출판단체들이 각각 심의를 통해 추천 목록을 만들면 이를 최종적으로 취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그러나 세종도서 운영위원회와 출판계 관계자들은 각 단체들이 개별적으로 심사위를 꾸리고 심사를 하는 것이 현재보다 더 공정하고 투명하다는 보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서관이 직접 구매를 할 경우 대출이 잘 되는 책 중심으로 책을 구매해서 양서 보급이나 출판의 다양성을 옹호한다는 이 사업의 취지가 어그러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 또 “올해는 원래대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출판계와 함께 큰 틀의 개편 방향을 논의하자”고 의견을 냈다. 그러던 중 문체부가 난데없이 보도자료를 내고 세종도서 사업 ‘때리기’를 시작한 것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출판계 관계자는 “문제로 지적된 객관성·공정성은 정량평가·심사위원 자격 강화 등으로 보완해가면 될 일이다. 그런데 별다른 대안도 없이 가장 큰 규모의 지원사업 집행을 미루고 있을 뿐 아니라 장관이 직접 ‘때리기’에 나섰으니 출판계 전체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시장성 부족한 양서를 주로 펴내는 출판사들은 혹시라도 정부 지원이 줄거나 끊길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2015년만 해도 142억원이었던 세종도서 관련 예산이 이제 84억원으로 깎였는데, 이 정도 예산은 목숨이 깔딱거리는 출판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는 정도”라며 “공공도서관과 학교 도서관 예산을 대폭 늘려도 모자랄 판에 문체부가 세종도서 사업을 운운하는 것은 제 얼굴에 침을 뱉은 일”이라 비판했다.

올해 세종도서 사업이 시행되는지, 예산 삭감 계획이 있는지 묻는 <한겨레>에 문체부 쪽은 “(앞으로 진행할) 감사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고 밝혔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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