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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네모 학교’에 나타난 ‘별별 모양’의 교사들 [책&생각]

등록 2023-05-26 05:01수정 2023-05-26 10:42

자퇴 경험·장애인·성소수자 등
다양한 교사들이 만난 학교와 학생

‘같음’을 강요하는 학교서 ‘다른’ 존재로 빛나
<별별 교사>의 지은이 중 한 사람인 시각장애인 김헌용 교사가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노트북 카메라, 마이크, 화면낭독기, 점자책 등을 놓고 원격수업 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그는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조’를 통해 장애인이 접근하는 데 장벽이 없는 학교 환경 조성 등을 요구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김헌용 교사 제공
<별별 교사>의 지은이 중 한 사람인 시각장애인 김헌용 교사가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노트북 카메라, 마이크, 화면낭독기, 점자책 등을 놓고 원격수업 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그는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조’를 통해 장애인이 접근하는 데 장벽이 없는 학교 환경 조성 등을 요구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김헌용 교사 제공

별별 교사들
다양성으로 학교를 숨 쉬게 하는 교사들의 이야기
이윤승·김헌용·선영·애리·유랑·조원배·함께 걷는 바람·진냥·김은지 지음 l 교육공동체벗 l 1만7000원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가수 유영석씨가 부른 ‘네모의 꿈’ 가사처럼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네모 세상’이다. ‘네모 학교’에서는 동그라미나 세모, 오각형, 별 모양 같은 다름은 잘 허용되지 않는다. 네모만이 정상이고 네모와 다른 것은 비정상처럼 취급당하기 십상이다. <별별 교사들: 다양성으로 학교를 숨 쉬게 하는 교사들의 이야기>는 네모만 정상처럼 통하는 ‘네모 학교’에서 동그라미나 오각형, 삼각형처럼 ‘별별 모양’으로 존재하며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 9명의 이야기다. 책에는 고등학교 때 자퇴한 경험이 있는 교사부터 시각장애나 청각장애가 있는 교사, 성소수자 교사, 성인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은 교사, 대학 졸업장이 없는 교사까지 ‘각양각색’ 교사들의 이야기가 무지갯빛으로 펼쳐진다.

기형도 시인을 좋아하고 한때 영화감독을 꿈꿨던 이윤승씨는 학창시절 학교가 지옥 같았다. 수학 수업이 재밌어도 수업 종이 울리면 공부를 멈추고 다른 과목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싫었고, 학생에게 아무런 선택권이 없는 학교가 답답했다. ‘반항기’ 가득했던 그는 사회 시간이든 국어 시간이든 자신이 쓰고 싶은 시를 쓰다 교사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상처투성이였던 그는 끝내 학교를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난 뒤 이씨는 ‘17살의 이윤승에게 통제와 규칙들, 폭력을 참으라고만 하지 않고 도움을 주려는 교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교사가 된다.

교사가 된 그는 학기 초 아이들을 상담할 때도 성적, 대학, 꿈 등에 대해 얘기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1년을 재밌게 보낼 수 있을까’에 집중한다. 학생들에게 “너의 삶이 남의 삶과 꼭 닮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그는 학생들과 평어를 쓰고 출석·조퇴·결석까지도 자유로운 방식으로 학급을 운영한다. 다른 교사들은 그를 ‘이상한 교사’라고 손가락질하지만, 그는 “내가 먼저 평균으로부터 벗어난 교사의 모습으로 학교에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꺾지 않는다. 이씨처럼 선형적인 분포 곡선에서 벗어나 학교라는 좌표 공간에서 장애인으로서, 성소수자로서,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다른 점을 찍고 다른 인생 곡선을 만들어가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지금 우리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학교나 교사의 모습이 얼마나 배타적이고 협소한지 알게 된다.

사회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과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려면 학생들이 사회로 나가기 전 만나는 공동체인 학교에서도 다양한 존재를 포용하는 삶이 구현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 시대 학교는 “같은 책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교사들 속에서 “언제까지나 같음을 잘 유지하기” 위해 모두 다 달려가고 있지 않냐고 책은 질문한다.

다름이 인정되고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학교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책은 ‘소수자성’을 띠는 교사들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가능함을 말해준다. 학교에서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이 교사들에게 “교사로서의 항해를 계속하도록 뱃길을 밝혀 주는 등대”가 다름 아닌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학생들은 ‘소수자성’을 띠는 이 교사들을 차별하지 않고 교사로서 존중해준다. 이러한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양성’ ‘포용성’이 삶에 스며들지 않을까.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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