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좌파 척결 블랙리스트’를 운용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오른쪽)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한겨레 자료사진
내게 필요하고 좋은 책, 그렇지 않은 책 등 개인 단위의 기준들을 모두 합친다고 해서 과연 한 사회 전체에 필요한 책과 좋은 책을 추려낼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기에 우리는 ‘시장’과 다른 ‘공공’을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출판문화의 경우 이 공공성이 더욱 강하게 요구되어야 하겠죠.
이 나라가 출판문화의 공공성을 위해 과연 무엇을 하고 있나 궁금해하며, 담당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년 업무계획’을 펴봅니다. ‘한국문화(케이컬처)가 이끄는 국가도약, 국민행복’이란 비전 아래 온통 케이-콘텐츠, 수출, 관광 등의 이야기가 즐비합니다. 지역균형발전 등 ‘공공스러운’ 이야기가 좀 나오나 싶었는데… 이런, ‘공정’이라 쓰인 걸 ‘공공’으로 잘못 봤네요. 그냥 덮습니다. 전문성을 기대할 수 있는 ‘출판문화산업진흥계획’(5개년)을 펴보니, 이제서야 ‘공공’ 이야기가 제대로 나옵니다. 핵심전략 ‘모두를 위한 책’ 아래 ‘공공수요’란 추진과제가 있네요. “종이책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감소함에 따라 우수하고 다양한 도서가 안정적으로 출판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답니다.
공공의 역할? 별 거 없습니다. 여러 수단들을 동원해 사람들이 좋은 책을 많이 사도록 만들거나, 이도 저도 안 되면 아예 직접 좋은 책을 사서 도서관 등을 통해 보급하는 거죠. 그런데 전자처럼 우아한 방식을 택할 수 없어 후자로 갈 경우, 우리는 그만 책을 사주는 ‘고마우신 나랏님’의 맨얼굴을 대면해야 하는 문제에 부닥치고 맙니다. 마음에 드는 작물이 없으면, 그분들은 언제라도 텃밭 자체를 갈아엎을 준비가 되어 있거든요.
최원형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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