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고려인문화관의 ‘홍범도 장군 특별전’에서 공개한 홍범도 장군 사진(왼쪽)과 2022년 문화관 개관 1주년을 기념해 문 빅토르 작가가 그린 홍 장군 초상화. 광산구 제공
방현석 지음 l 문학동네 l 각 권 2만원 준엄한 북녘의 산맥에서 화승총 하나 들고 신포수를 따라 사냥을 배우고 왼손으로도 호랑이 머리에 총탄을 쏘아 박은 열다섯 소년. 조선말 민란에 뛰어들었던 머슴 출신 맨손의 살수(殺手)가 그의 아버지였고, 그때 포수가 스승이 됐다. 모름지기 포수는 사격술로만 완전해질 수 없다. “기러기가 나는 높이와 꿩의 잠자리는 내일 바람의 방향과 비의 양을 알려주고. 노루와 멧돼지의 철수 시간은 모래의 이동 계획을 예고해주지 않니. 산세와 지형, 하늘의 움직임을 알고, 내가 그 산야의 일부가 되면 산야는 내 편이 되어주지.” 신포수가 이르길, 지피지기, 추격필포, 과감무쌍, 일격필살에 이어 ‘포수의 법칙’을 완성하는 산야일체. 소년은 스승의 충고대로 산에서 내려와 관군에 입대한다. 그의 이름 홍범도(1868~1943). 작가 방현석(62)은 신작 <범도>의 방대한 서사를 이렇게 시작한다. 소년 포수는 먹고살고자 나이를 속인 채 입대한 평양 감영에서 목도한 시대 부조리, 일본군에 대한 적의를 키우며 의병대 명사수가 되고, 전장에서 투사들과 인연 맺으며 마침내 봉오동 전투(1920)를 이끈다. 그리고 기구하게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생을 마치기까지 범도의 생애를 지은이는 1300쪽 분량(2권)으로 좇는다. 실재와 허구가 버무려졌다. 도리 없다. 방현석은 8일 <한겨레>에 “(자서전인) <홍범도일지>엔 오랜 기간 단독적 여단으로, 그러니까 일본군 상대로 혼자 ‘싸웠다’ 한 줄 기록이 많다. 아들이 죽었을 때도 한 줄이다, 전율적으로. 이걸 복원해야 했고 개연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고 말한다. “소설 속에선 다 사실”이라는 그의 말마따나 픽션은 논픽션의 ‘반대말’이 아니라, 논픽션의 ‘최상급’일 수도 있겠다. 홍범도가 1인칭 화자가 되고, 군에서 처음 형이라 부르며 따랐던 백무현, 그의 여동생 백무아, 이상주의자 차이경 등에 숨이 불어넣어진 까닭. 하여 지역과 준령을 넘나들며 치른 항일 유격전의 입체성과 소영웅들이 주고받는 말들의 긴박성이 벼려진다. 방현석은 “13년 전부터 준비해 최근 3년 반은 꼬박 이 소설에만 매달렸다”며 “젊은 세대들에게 지난 시대의 수혜가 없이, 낡은 것은 무너졌지만 새 가치와 희망은 아직 불투명한 시대가 당시와 굉장히 유사하다. 혼돈과 절망의 시대 길을 개척한 사람들이 줄 수 있는 의미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이 합세해 일본군을 처음 대파한 봉오동 전투의 시작이 이달 7일이었다. 고작 2년 전 그의 유해가 한국으로 봉환되기 전 카자흐 정부가 처음 공개한 공문서 내용은 이러하다. “홍범도. 1939년 3월25일부터 월 1백 루블의 봉급을 받고 고려극장의 수위로 근무한다.” 소설 속 홍범도가 마지막 퇴각하며 ‘독립 이후’를 얘기 나눈 이가 일본군 중위로 탈영해 신흥무관학교에 들어왔던 지청천 장군이다. 그가 잠든 서울 현충원 윗자리엔 탈영을 함께 맹세하고도 패망 일본에 일본군 대좌로 충성을 다한 이응준이 있다. 대전에 안장된 홍범도가 ‘짧은 승리로 남은 모든 날의 패배를 견디고 있다’고 작가가 보는 이유고, 소설은 그 단독자에 대한 헌사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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