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용호동에서 만나
공지희 지음, 김선진 그림 l 창비(2021)
동화 속 용호동처럼 내가 살던 곳에도 어김없이 기차가 다녔다. 어릴 때는 수인선 근처에서, 독립해서는 경의선 근처에서 여러 해를 살았다. 철길을 따라 학교에 다녔고 기찻길 옆 주점에서 술도 마셨다. 이제 경의선은 지하로 숨었고 대신 철로가 놓였던 지상에 공원이 생겼다. 경의선이 지나던 구간 중 연남동은 ‘연트럴파크’가 되었다. 공원이 생기기 전 연남동 철길에는 키 큰 은행나무가 보기 좋았다. 가을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따라 걸으면 여운이 길게 남는 길이었다.
공지희 작가의 <우리 용호동에서 만나>를 읽고 앞표지를 한참 바라보았다. 김선진 그림작가가 표지에 그린 용호동 마을이 아무래도 내가 살았던 철길이 있던 동네 같았다. 용호동은 철길을 마주 보고 ‘용호슈퍼’와 ‘카페 안녕’이 있고 안쪽에 생선구이 밥집인 ‘구이구이’와 집수리 전문인데 인형 수리도 잘하는 ‘수리수리’ 같은 점포가 있다. 철길 주변으로 마을 사람들이 천천히 지나다닌다. 카페를 기웃거리는 할머니와 시속 3㎞로 수레를 끄는 서창수 할아버지의 굽은 허리도 보인다.
동화 속 용호동은 현실의 수많은 용호동처럼 곧 사라질 예정이다.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이런 동네에 집주인은 살지 않는다. 오갈 데 없는 이들이나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 혹은 혼자 남은 어르신이 마지막까지 동네를 지킨다. 용호동 아이들에게 친구가 없는 건 자연스럽다. 친구들은 대개 신축 아파트로 혹은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친구가 살던 집은 카페로 변했거나 빈집이 되었거나 철거되었다. 용호동 아이들은 철길을 배회할 수밖에 없다. 집에 있어 봤자 즐거울 일도 없다. 엄마 아빠가 하는 구이구이 식당은 옛날만큼 장사가 안 된다. 용호슈퍼를 하는 정우 엄마의 사정도 답답하다. 이모와 삼촌은 자꾸 엄마에게 “밥은 먹고 사냐?”고 묻는다. 철길에서 아이들은 또래 대신 어른들과 마주친다. 아이들은 철길에서 노숙자 아저씨와 인생을 이야기하고, 가난한 예술가 지망생의 기타 소리를 들으며 ‘밥은 먹고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고민한다.
이 동화집에 아드레날린을 과하게 분비시키는 자극적인 서사는 없다. 그저 용호슈퍼 앞에 앉아 철길을 바라보다 만날 법한 이야기뿐이다. 형식화의 우려는 있지만 연작 동화에서 등장인물은 제 차례가 되면 주인공이 된다. 조연이 아닌 주인공에게는 사연이 있고 서사가 있다. 정우는 슬금슬금 피했던 노숙자 아저씨와 얌체라고만 생각했던 ‘귀신 손톱 형’에게 속 깊은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유 없는 삶은 없고 공감은 이해로부터 시작되는 법이니까.
정우와 친해진 노숙자 아저씨는 “벤치를 보면 동네 인심을 알 수 있지”라는 말을 했다. 용호동처럼 노숙자가 누울 수 있는 벤치가 남은 동네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용호동 벤치에도 칸막이가 생겼다. 이제 정우는 노숙자 아저씨를 만날 수 없다. 아저씨는 잘 계시는 걸까. 용호동 비슷한 동네에 사는 나 역시 팥죽 할머니도 서창수 할아버지도 못 본 지 오래다. 다들 잘 계시는 걸까. 초등 중학년부터.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