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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한반도를 분단시킨 건 내 조국 미국이었다”

등록 2023-06-09 05:01수정 2023-06-09 21:26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 완역
‘해방 직후’ 면밀 탐사로 ‘기원’ 밝혀

미군정 ‘혁명적 민족주의 탄압’ 주목
한국전쟁은 ‘내전적 성격의 국제전’
한국전쟁 연구의 기념비적 저작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브루스 커밍스.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전쟁 연구의 기념비적 저작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브루스 커밍스.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전쟁의 기원 1: 해방과 분단체제의 출현 1945~1947
한국전쟁의 기원 2-1, 2-2: 폭포의 굉음 1947~1950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범 옮김 l 글항아리 l 1권 4만원, 2-1·2-2권 각 3만5000원

한국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1953년 7월27일 조인된 협정은 전쟁을 일시 중단한다는 정전협정이었다. 종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신의주까지 한반도 전역을 폐허로 만들고 한반도 민중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긴 한국전쟁은 언제 어디에서 기원했는가? 브루스 커밍스(80, 미국 시카고대학 석좌교수)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은 이 문제에 관한 가장 심층적이고 발본적이며 선도적인 저작으로 꼽힌다. 1981년 출간된 이 저작의 제1권은 1980년대에 한국어로 번역된 바 있으나, 1990년에 나온 제2권은 오랫동안 우리말 번역본을 얻지 못했다.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탁월한 한국전쟁 연구서로 평가받는 이 기념비적 저작이 완간 후 33년 만에 한국어로 전모를 내보였다. 한국어판은 전체 3권(제1권, 제2-1권, 제2-2권)에 모두 20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커밍스는 완역판에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와 소회를 밝히는 긴 서문을 달았다.

‘기원’은 ‘시작’과 다르다. 커밍스 이전의 연구서들은 누가 전쟁을 시작했는지를 밝히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커밍스는 ‘누가 먼저 쏘았나’를 묻기 전에 ‘왜 쏠 수밖에 없었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한국전쟁의 성격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다. 전면전이 터지기 2년 전부터 남한에서 벌어진 유격전과 38선에서 일어난 국지전으로 이미 10만여명의 사상자가 났다. 이런 사실을 고려하면 1950년 6월25일의 총성이 어디서 먼저 울렸는지를 따지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전쟁의 기원을 밝히는 일이다. 커밍스는 그 기원이 1945년 8월15일 해방 이후 1년여 사이에, 더 좁히면 해방 직후 몇 달 사이에 형성됐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제1권은 바로 이 시기를 한반도 내부와 외부의 역학관계 속에서 추적한다.

커밍스가 주목하는 것은 한반도 내부의 상황, 특히 수십년 일제 강점이 빚어낸 민족문제와 계급문제를 둘러싼 상황이다. 해방 직후 한반도는 크게 보아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었다. 식민지 억압·수탈에 시달린 소작농‧노동자 중심의 민중과 일제에 맞서 싸운 항일 투사들이 혁명적 민족주의 세력을 이루었고, 일제의 강압정책의 수족이 된 관료‧경찰‧군인과 총독부에 협력한 자본가‧지주가 그 반대편을 이루었다. 해방 직후에 압도적 우세를 보인 것은 항일 세력이었다. 그런 사정을 보여주는 것이 중도좌파 지도자 여운형이 중심이 돼 8월17일 결성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다. 건준은 하룻밤 새 퍼져 나가 한반도 전역에 걸쳐 145개 지부를 거느렸다. 이어 9월6일 건준 활동가 수백명이 서울에서 모여 조선인민공화국(인공) 수립을 선포하고 과도정부를 구성할 지도자 87명을 선출했다. 절대다수가 식민지 감옥에서 출소한 항일 투사들이었다.

이틀 뒤 인공은 이승만(주석), 김구(내무부장), 김규식(외무부장)을 앞세운 내각 명단을 발표해 좌익과 우익의 연합을 향해 나아갔다. 인공이 9월14일 발표한 선언문에는 인공의 지향점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일본 제국주의 잔재 세력을 완전히 축출하는 동시에 우리의 자주독립을 방해하는 외국 세력과 모든 반민주적 반동세력에 철저히 투쟁해 완전한 독립국가를 건설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할 것을 기약한다.” 이 시기에 전국의 도·군·면에 인민위원회가 결성됐다. 인민위원회는 민중의 혁명적 열망을 표출하는 통로였다. 커밍스는 “1945년 외국군의 점령이 없었더라면 인공과 인민위원회는 몇 달 만에 한반도를 장악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9월8일부터 군정을 시작한 미군은 좌파 세력이 포진한 인공을 인정하지 않은 채 보수‧친일 세력과 손을 잡았다. 더 나아가 일제의 경찰기구를 그대로 재활용하고 항일유격대를 토벌하던 일제 군인들을 모아 국방경비대를 창설했다.
한국전쟁 연구의 기념비적 저작 &lt;한국전쟁의 기원&gt;을 쓴 브루스 커밍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한국전쟁 연구의 기념비적 저작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브루스 커밍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주목할 것은 서울의 미군정과 워싱턴의 국무부가 항상 의견이 일치한 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미군정은 처음부터 38선을 공산주의에 대한 봉쇄선으로 설정하고 남한의 혁명적 세력을 멀리했다. 특히 1946년 가을 민중 봉기를 제압한 뒤로 좌익 세력 탄압을 본격화했다. 워싱턴의 국무부는 애초 국제협력주의 원칙에 따라 미국‧소련‧중국‧영국의 4대국이 참여하는 신탁통치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내부 갈등 속에 미군정의 반공·봉쇄 방침을 추인하고 말았다. 한반도 정책을 주도한 것은 미군정이었다. 미군정의 지휘 아래 한반도는 1947년 트루먼 독트린이 소련 봉쇄를 공식화하기 한참 전인 1945년 말에 냉전을 처음 시작한 곳이 됐다.

이 책의 제2권은 1947년부터 1950년까지의 상황을 추적하고, 특히 이 시기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를 면밀히 살핀다. 제2권이 출간된 뒤 공개된 소련 시절 기밀문서를 통해 스탈린이 김일성의 전쟁 계획에 관여했음이 드러났다. 이 기밀문서를 근거로 삼아 한국전쟁 연구자들 사이에서 ‘커밍스가 스탈린의 역할을 너무 낮게 평가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커밍스는 “내가 북한의 독립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한국어판 서문에서 고백하면서도 전체 논지를 철회할 뜻이 없음을 명확히 한다. “소련이 이 전쟁에 참전하려 하지 않았다는 내 주장은 옳았다. (…) 1950년 후반 (미군의 북진으로) 북한이 가장 큰 위기에 빠졌을 때도 스탈린은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커밍스는 한국전쟁이 내전으로 출발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한국전쟁은 한 나라 안에서 ‘혁명이냐, 반동이냐’를 놓고 두 세력이 벌인 시민전쟁이자 혁명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이 내전이 미국을 포함한 외세의 개입으로 국제전으로 비화했다. 미군정과 워싱턴이 미국의 패권 전략에 따라 남한에서 한쪽 편을 드는 과도한 내정 개입을 하지 않았다면 남북분단이라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커밍스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1945년 이후 이 유서 깊은 나라를 경솔하고 분별없이 분단시킨 미국의 고위 지도자들”의 잘못을 추궁하면서 “한국을 분단시킨 것이 내 조국이었기 때문에 나는 늘 책임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한국전쟁을 종결할 책임도 미국에 있을 것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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