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수 교수가 고 강덕상 교수 기증 자료에 포함된 ‘간토대지진 당시 계엄군 배치도’를 들어보이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상상 이상의 자료를 가지고 계셨더군요. 하나를 생각하면 두겹, 세겹으로 자료가 나와요.”
이규수 전북대 고려인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월부터 서울 광화문역 근처 사무실에서 스승인 재일사학자 고 강덕상(1931~2021) 전 히토쓰바시대 교수가 동농재단(이사장 김선현)에 기증한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올해 100년인 간토대지진 연구의 개척자이자 집필에 꼬박 20년이 걸린 <여운형 평전>(전 4권, 2019년 완간)의 저자인 강 교수 유족은 지난해 12월 고인이 평생 모은 장서와 사료, 서화류 등을 모두 기증한다는 계약서를 재단과 체결했다. 지난달 창립총회를 열고 오는 8월 공식 출범을 앞둔 재단은 강덕상자료센터를 설치해 기증자료를 정리하고 공개할 계획이다.
오는 9월 고인의 자료를 토대로 간토대지진 100년 전시회도 계획하는 이 교수를 지난 12일 사무실에서 만났다. 히토쓰바시 대학에서 고인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스승의 구술 회고록 <시무의 역사학자 강덕상>(어문학사, 2021)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다. 그는 스승의 자료 정리에 전념하려고 지난해 초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선생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자료가 분산되는 걸 가장 걱정했어요. 가능하면 자료를 한국에 가져가 정리해 공개하면 좋겠다고 하셨죠. (자료를) 사회화시켜달라는 유지였죠.”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3살부터 평생을 재일동포로 살아온 고인의 장서가 왜 한국에 왔느냐는 질문에 대한 제자의 답이다. “한국의 공공기관이나 대학도서관과도 교섭했지만 거기서 자료를 제대로 정리할까, 의구심이 들더군요. 그러던 차에 동농 김가진 선생의 증손녀인 김 이사장이 재단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수 의사를 타진했는데 선뜻 받아주셨죠.”
재단은 지난 2월에 700상자가 넘는 기증 자료를 모두 한국에 가져왔고 이 중 14상자 분량의 간토대지진 자료를 우선 정리하고 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재일한인역사자료관(관장 이성시)과 함께 오는 9월에 인천의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차별과 저항’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합니다. 또 10월에는 고려대박물관에서 간토대지진 주제만으로 전시하려고요. 강 선생님 기증 자료가 중심이죠.”
이규수 교수가 고 강덕상 교수 기증 자료인 간토대지진 당시 모습을 새긴 목판화를 들어보이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고 강덕상(오른쪽) 교수와 이규수 교수가 4년 전 고인이 완간한 <여운형 평전>을 함께 잡고 사진을 찍고 있다. 이규수 교수 제공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개관을 이끌고 초대 관장도 맡았던 고인은 역사 연구자 이전에 성실한 자료 수집가였다. 1963년부터 13년 동안 간토대지진과 삼일운동,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사료를 각기 집대성한 자료집 <현대사자료>를 6권이나 냈다. 특히 일본 관헌 자료와 현장을 답사하며 발굴한 각종 자료를 수년간 모아 정리한 <현대사자료-간토대지진과 조선인>(1963)은 발간 즉시 일본 언론과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의 ‘기승전결’을 자료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고인은 자료집과 저술을 통해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배후에는 일본 민중의 분노가 왕실이나 치안 당국으로 향하지 않을까 염려한 관헌 수뇌부의 술책이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이 교수는 이번 기증자료는 <현대사자료>의 원천 자료들이라고 밝혔다. “해방 이전 일제 관헌 자료를 마이크로필름으로 만든 게 많아요. 해방 이후 일본에서 나온 한국 관련 연구서도 대부분 구비되었죠. 불과 5~6년 전에 나온 책까지요.” 그는 100년 전에 나온 <계엄사령부 정보>라는 책자를 보여주었다. “여기에 대지진 당시 계엄군 배치도와 각종 포스터 및 군 작성 자료들이 있어요. 선생님이 어떤 경로로 이 책자를 입수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대지진 당시 사진도 여러 장 있고 일간지 호외 원본도 있어요. 최근 이성시 관장이 이 자료를 보더니 (가치가) 상상 이상이라고 해요.”
일제 침략과정을 그린 300~400장 되는 목판화(니시키에) 세트도 기증 목록에 있다. “선생님이 일본 집 세 채 가격을 들여 샀다고 해요. 일본에서도 무척 희귀한 목판화이죠.”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연구 개척
고 강덕상 히토쓰바시대 교수 제자
동농재단에 기증한 스승 자료 정리 중
“DB화해 누구나 이용하도록 할 계획”
9월 ‘간토대지진 100년’ 전시 계획
“‘100년 전 일로 무릎…’ 발언 뒤
전시장 대여에 공공기관들 난색”
시간강사 등 계약직 교수를 전전하던 고인은 만 58살에 히토쓰바시대 교수로 임용돼 ‘재일 한국인 첫 일본 국립대 정규직 교수’가 됐다. 생활이 빠듯한 강사 생활에도 고인은 헌책방에서 관심이 가는 자료를 보면 지나치는 법이 없었단다. “선생님 모친과 사모님이 대를 이어 도쿄 요요기역 앞에서 중국집을 하셨어요. 선생님이 이 식당 카운터에서 돈을 가져가 책을 많이 사셨다고 해요. 그렇게 해도 사모님은 아무 말도 안 하셨다는군요. 기증도서 중 <청한인걸전>이라는 소책자가 있는데 정가가 2만8천엔이더군요. 저라면 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기증 자료 중 이 교수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일기란다. “선생님은 고교생 때부터 별세 전까지 매달 대학노트 1권 분량의 일기를 쓰셨어요. 일기를 얼추 보니 신문스크랩이나 편지는 물론 한국 왔을 때 들른 식당 메뉴까지 있어요. 뭐가 더 나올지 궁금해요.”
그는 앞으로 대학 연구기관과 협력해 기증 자료를 디비화하고 해제도 붙여 국립중앙도서관 망을 통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교수와 스승과의 인연은 그가 고려대 사학과를 나와 일본 유학을 떠난 1984년으로 올라간다. “당시 히토쓰바시 대학 시간강사였던 선생님에게 일본사를 전공하겠다고 하니 ‘일본 근대의 핵심은 조선 문제’라면서 조선사 연구를 권하시더군요. 그 뒤 조선사로 방향을 잡고 박사 논문도 ‘근대 조선의 식민지 지주제와 농민운동’을 주제로 썼죠.” 그는 고인이 정규 교수로 재임 중 배출한 유일한 박사 제자이다. “제가 조선사 전공 석사 2년 차부터 대학 교수님들과 싸웠어요. 대학에 조선사를 가르칠 정식 교수님이 필요하다고요. 다행히 교수님들이 호응해 강 선생님께서 89년에 정식 교수가 되셨죠.”
스승은 어떤 학자였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성실한 연구자”라면서 덧붙였다.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연구는 지금도 선생님을 넘어설 수 없어요. 한국은 아직도 이 주제로 박사 논문도 나오지 않았고 이 주제 논문들도 선생님 연구에 의존하고 있어요.”
그는 이번 ‘간토 100년’ 전시를 준비하면서 전시장 확보에 애를 먹었다고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0년 전 일로 일본이 무릎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한다’고 했잖아요. 그 때문인지 공공기관에서 모두 전시에 난색을 표하더군요. 현 정부뿐 아닙니다. 1945년 이후 그 어떤 한국 정부도 일본 쪽에 조선인 학살에 대해 항의하거나 조사를 요구한 적이 없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윤석열 정부 한-일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과거사를 무시하고 내일을 논할 수 있겠어요? 강 선생님은 생전에 일본 사회에 기대할 게 없다고 하셨죠. 남북한 화해협력 만이 동아시아 평화의 길이고 일본과 중국도 바꿀 것이라고 하셨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