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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책&생각]

등록 2023-06-16 05:00수정 2023-06-16 10:29

프랑스 시인 르네 샤르(1907~1988). 위키미디어 커먼스
프랑스 시인 르네 샤르(1907~1988). 위키미디어 커먼스

시는 언제나, 르네 샤르
이찬규 지음 l 그린비 l 1만5000원

프랑스는 시인의 나라다. 그 자신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언급되곤 했던 프랑스 시인이자 평론가인 이브 본푸아(1923~2016)는 보들레르, 말라르메, 베를렌을 ‘땔감’ 삼아 “랭보만을 문제삼는” 평론집을 내놓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별로 읽히지 않거나 잘못 읽히고 있는 랭보가 얼마나 필요하며 또 앞으로도 내내 필요할지를 인식하는 일”의 긴요성 때문이다. 최근 번역 소개된 <우리에게는 랭보가 필요하다>(문학동네)의 정체다.

이에 견주면 르네 샤르(1907~1988)의 존재는 적이 미약하다. 교우했던 폴 엘뤼아르는 물론이거니와 동시대 시인으로 국내 시집도 갖고 있는 프랑시스 퐁주, 자크 프레베르, 앙리 미쇼와 비교해봐도 그렇다. 하지만 소설가·평론가인 모리스 블랑쇼(1907~2003)가 헌사한 “시의 시”란 말로 가늠되듯 르네 샤르가 새겨진 문학과 철학의 세계를 보면 놀랍다.

대표적으로 미셸 푸코(1926~1984)의 박사학위 논문 <광기와 비이성: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의 서문(“이제 막 속삭이기 시작하는 슬프고도 장한 동료들이여. …당신의 정당한 낯섦을 일구어내라.”), 한나 아렌트(1906~1975)의 말년 저작 <과거와 미래 사이>를 여는 서문(“우리의 유산은 어떤 유서보다 앞선다”)이 샤르의 것이다.

프랑스 시인 르네 샤르가 2차 세계대전 중 저항군으로 활동하던 때의 모습. 뒷줄 키가 가장 큰 이가 르네 샤르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프랑스 시인 르네 샤르가 2차 세계대전 중 저항군으로 활동하던 때의 모습. 뒷줄 키가 가장 큰 이가 르네 샤르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샤르는 남프랑스 릴쉬르라소르그 네봉에서 태어나 1차 세계대전과 아버지의 죽음을 치르며 10대를 보냈다. “꽃이 핀 산사나무는 나의 첫 번째 알파벳이다”, “나의 고장에서는, 누구도 감동한 자에게 질문하지 않는다”고 썼던 언어와 감각의 수원. 샤르에게 초현실주의라는 사조와 레지스탕스 지도자라는 이력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앞서 고등학교 때 특히 탐독했다는 파브르의 <곤충기>를 통해 존재를 “왜곡하지 않고 보여” 주는 시적 가치를 깨우쳤다.

22살 출간한 <심장 위의 종들>이 첫 시집 아닌 첫 시집. 친구들에게 준 것까지 모두 거둬 불태웠다. 졸렬한 제목의 “허락될 수 없는 시들”이란 거다. 유명해지기 전의 엘뤼아르에게 먼저 편지 써 교우했고,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한다. 1946년 <히프노스의 단장>은 샤르가 전선에서 길어 올린 실존과 역사의식의 글 조각들로 가득하다. “레지스탕스의 시적 기록”이란 평단의 수사를 마다하고 샤르는 “미친 산과 환상적인 우정의 세월에 대한 수첩”이라 불렀다. 2차대전 후 왕성한 창작을 이어가며 알베르 카뮈,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와도 깊이 교류한다.

이러한 생의 개요는 사실 카뮈의 글 한 줄만큼도 샤르를 설명해내지 못한다. 카뮈가 보낸 편지의 한 구절.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르네 샤르가 국내 덜 친숙한 데엔 시의 난해함도 있겠으나 그조차 경험하기 충분치 않았다. “르네 샤르의 번역 시집이나 온전하게 할애된 저작이 아직 없”기 때문이라며 이찬규 숭실대 교수(불어불문학)가 내놓은 대중학술서 <시는 언제나, 르네 샤르>가 길잡이가 될 법하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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