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한대수림 탐사·연구
점점 북쪽으로 “행군하는” 나무들
복잡한 숲과 자연의 알고리즘
수목한계선의 ‘지금, 여기’ 생생 전달
점점 북쪽으로 “행군하는” 나무들
복잡한 숲과 자연의 알고리즘
수목한계선의 ‘지금, 여기’ 생생 전달
노르웨이 핀마르크 고원에서 순록들이 이동하고 있다. 이곳에는 솜털자작나무가 살아남았다. Jonathan Donovan 제공.
수목한계선과 지구 생명의 미래
벤 롤런스 지음, 노승영 옮김 l 엘리 l 2만2000원 아마존 열대 우림이 지구의 허파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신이 얼마나 지구가 처한 현실을 모르고 있는지, 우리의 지도가 얼마나 낡았는지, 뼈저리게 깨달을 것이다. <지구의 마지막 숲을 걷다>의 저자 벤 롤런스는 “아마존 우림이 아니라 북부한대수림이야말로 지구의 진짜 허파”라고 말한다. 고산 및 극지에서 수목이 생존할 수 있는 극한의 선을 수목한계선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여름(7월) 평균 온도가 10도인 지대가 수목한계선인데, 지구 위쪽을 두른 이 선은 북극권을 정의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국제인권감시기구에서 연구자 생활을 했고, 현재는 다양성, 공생 등의 생태 철학을 토대로 블랙마운틴대학(영국 웨일스 소재)을 공동설립해 교육과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저자는 지구 최북단의 수목한계선인 북부한대수림을 직접 찾아 살펴보고 이 책을 썼다. 저자는 4년 동안 스코틀랜드, 노르웨이,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 그린란드 총 6곳의 북부한대수림을 찾아 관찰했는데, 그의 표현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나무들은 북쪽으로 “행군하고 있다”. 일년의 대부분이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어야 할 북극 툰드라 떨기나무 천지가 되면서 초록색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숲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숲의 면적이 늘어난다면 지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저자는 이런 상식을 보기 좋게 깨트린다. 그는 책에서 “나무는 툰드라 동토에 침입하여 영구동토대(땅이 항상 얼어 있는 지대)의 해빙을 촉진하는데, 영구동토대가 녹아 그 안에 갇혀 있던 온실가스가 빠져나오면 과학자들의 예측을 모조리 뛰어넘는 수준으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할 것”이라며 “나무가 건네는 것은 이제 위로가 아니라 경고”라고 말한다. 저자가 북부한대수림을 관찰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은 몇 안 되는 수종이 수목한계선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한 추위를 견뎌내고 끝까지 살아남은 나무는 바로 구주소나무, 솜털자작나무, 다우르잎갈나무, 가문비나무, 발삼포플러, 그린란드마가목 6종이다. 그렇다면 북쪽으로 행군하고 있는 나무, 그리고 그 나무들이 모인 숲이 반가운 손님만은 아니라면, 인간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 책은 수목한계선의 ‘지금, 여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인류가 오만하고 무지한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을 왜 탈피해야 하는지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또 단순히 나무를 많이 심어서 기후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하는 단편적인 접근이 아니라 숲마다, 생태계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기후변화 영향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에 걸맞은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른바 전략생태학이다. 마지막 빙기 이후 1만1000년 동안 인류는 나무와 공진화해왔다. 숲은 나무의 광합성과 증발산을 통해 비를 만들고 바람을 생성해 전 지구의 대기 순환에 영향을 미쳤다. 숲은 또 바다와도 연결돼 있다. 해양 먹이사슬의 기반인 식물성 플랑크톤은 광합성하기 위해 필수 촉매인 철을 필요로 하는데, 숲의 낙엽이 분해되며 생성된 철은 부식산과 결합해 강을 따라 바다로 흘러든다. 이렇게 숲은 지구를 구성하는 다른 생명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긴밀하게 모든 것이 연결돼 있는 숲에 변화가 발생한다면, 그와 연결된 모든 생명에게도 변화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저자가 방문한 스코틀랜드의 산간분지 글렌로인에는 540살 먹은 ‘할머니 소나무’가 외롭게 서있다. 소나무는 원래 사회적 존재로, 균류망을 통해 자원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의지한다. 숲 연결망이 건강하다면 구주소나무의 자연 수명은 600~700년에 이르는데, 홀로 서있는 이 ‘할머니 소나무’는 수명대로 살지 못할 수 있다. ‘할머니 소나무’ 곁에 숲 연결망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소나무 줄기와 잎을 먹어대는 사슴이 너무 많아져서다. 사슴은 소나무 숲이 건강하게 유지되는 데 꼭 필요한 동물이지만, 사슴 수가 또 너무 늘면 소나무가 자라기도 전에 어린 나무를 다 먹어치워 이처럼 숲의 생태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이런 현상 속에서 숲을 보존하기 위해 사슴을 총으로 쏴서 죽이고 사슴 개체수를 조절하고 있다고 한다. 노르웨이 핀마르크 고원에는 솜털자작나무가 살아남았다. 키가 작고 줄기는 우툴두툴하고 가느다란 잔가지가 손바닥처럼 마디져 있는 이 나무는 이 지역에 사는 인간, 동물, 식물에게 필수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솜털자작나무가 노르웨이 툰드라에 더 많이 뿌리내리면서 이 지역에 사는 순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솜털자작나무로 인해 땅속 미생물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땅의 기온이 상승했고, 땅이 녹고 얼기를 반복하다 보니 지표면에 얼음 껍질이 형성됐다. 이런 변화로 이곳에 사는 순록들은 자신들의 먹이인 지의류(이끼처럼 보이는데, 곰팡이와 조류가 만나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공생체)에 접근하기 어려워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솜털자작나무로 인해 땅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영구동토대가 녹아 메탄 방출도 많아졌다. 메탄은 온난화 측면에서 이산화탄소보다 85배나 강력한 온실가스라고 하니 그냥 손놓고 있을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지역에서는 나무를 베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나면 ‘생태계의 알고리즘’이 얼마나 복잡한지 놀라게 된다. 만물의 영장이라며 과학을 기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인간이 이 복잡하고 오묘하고 신비한 생명의 세계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끈질긴 관찰 그리고 수목한계선에 사는 사람들과의 심층 인터뷰, 또 높은 생태 감수성에 기반한 다양한 생태계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돋보이는 책이다. 아직은 먼 일로 생각하거나 당장은 급한 일로 생각하지 않았던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문제가 ‘나의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또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수많은 나무들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내 곁에 있는 나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을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