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서울 중랑구 장미공원에서 열린 서울장미축제. 연합뉴스
장미의 문화사
사이먼 몰리 지음, 김욱균 감수, 노윤기 옮김 l 안그라픽스 l 2만5000원
“이름이 뭐가 중요할까요? 우리가 장미를 어떻게 부르든 이름이 무엇이든 그 향기는 달콤할 거예요.”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줄리엣의 대사다. 사랑하는 로미오가 제 집안과는 원수지간인 몬터규 가 출신임을 알게 된 뒤, 이름과 가문보다는 로미오라는 인간과 그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더 본질적이며 중요하다는 뜻을 담았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할 이 사랑 이야기에서 장미는 사랑의 상징으로 홀로 향기롭다. 밸런타인데이를 비롯한 기념일에 장미꽃을 주고받는 이즈음의 관습이 줄리엣의 마음에서 멀지 않을 것이다.
미술사학자인 사이먼 몰리 전 단국대 교수가 쓴 <장미의 문화사>는 장미를 둘러싼 문명과 문화, 과학과 예술, 인간 본성과 사회 변화를 두루 살핀다. 장미의 분류법과 개량 과정, 신화와 종교 및 문학과 미술 작품에 나타난 장미의 이미지, 가드닝(정원 가꾸기)과 화훼 산업, 장미 향수와 장미유 등 장미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루었다.
“만일 제우스가 환한 미소를 머금고 우리 가운데/ 꽃 중의 왕을 간택한다면,/ 그는 장미를 호명하여 왕의 관을 씌울 것이네”
고대 그리스 시인 사포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시 ‘장미의 노래’ 한 대목이다. 여기에서 보듯 장미는 ‘꽃 중의 꽃’ 또는 ‘꽃의 (여)왕’으로 일컬어지며 특별한 지위를 누려 왔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서양의 경우였고,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중국은 장미의 중요한 원산지 가운데 한 곳이고, 특히 개화 기간이 짧았던 서양 장미가 오늘날처럼 긴 개화 기간을 지니게 된 것은 중국 장미와의 교접의 결과였음에도, 가령 매화나 난초 및 국화에 비해 장미는 중국에서 그다지 귀한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중국 장미가 유럽에 본격 유입된 것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의 일이었고, 그렇다는 것은 사포나 줄리엣이 노래한 장미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그 장미와는 다른 장미였다는 뜻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태어나면서부터 마른 땅에 떨어진 바다 거품을 흰 장미로 탈바꿈시켰고 이 장미에 여신의 피가 닿으면 붉은 장미로 바뀌었다고 한다. 아프로디테는 사랑의 신 에로스의 어머니이자 그 자신 제우스에 못지않은 난봉꾼이었기 때문에 여신의 상징과도 같은 장미는 관능적 쾌락의 이미지를 수반했다. 다른 모든 꽃과 마찬가지로 장미꽃 역시 식물의 성기인 데다 그 모양이 여성의 성기를 닮았다는 사실이 이런 연상에 설득력을 더했다.
사실 성경에는 장미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지만, 중세 이후 서구 기독교 사회는 쾌락과 관능의 장미를 경건과 신성의 상징으로 탈바꿈시키게 된다.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썼던 면류관은 장미 가시나무 가지가 되었고, 그리스도의 피는 ‘장미색’으로 불렸다. 성모 마리아는 ‘고귀한 장미’, ‘순결한 장미’, ‘천상의 장미’ 등으로 일컬어졌으며, 단테의 <신곡>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육신으로 화한 장미”라는 표현을 얻었다. 가톨릭의 묵주를 가리키는 말 ‘로사리’(rosary)나 ‘장미 목걸이’, 고딕 성당의 장미창도 같은 맥락이다. 흥미로운 것은 성경과 마찬가지로 코란에도 장미가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마호메트의 모습을 흔히 장미에 비유하는 이슬람의 관습 역시 기독교를 닮았다는 사실이다.
앙리 팡탱라투르의 <장미 바구니>. 위키미디어 코먼스
“오 장미여, 너는 병들었구나/ 거센 폭풍우 속을/ 날아다니던/ 저 보이지 않는 밤의 벌레가// 진홍빛 쾌락의/ 너의 침대를 찾아냈구나/ 이제 어둡고 은밀한 사랑으로/ 너의 생명을 끊는구나.”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병든 장미’는 여성과 사랑의 상징인 장미가 거느린 어두운 그림자를 부각시킨다. 사랑과 쾌락이 질병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남성들의 두려움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블레이크보다 한 세기 정도 뒤에 태어난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붉은 장미의 탄생에 얽힌 페르시아 설화를 소재로 삼은 단편 ‘나이팅게일과 장미’에서 저급한 물질주의와 예술적 가치 사이의 대결을 그린다. 소설가 로런스는 “완벽한 장미는 타오르는 불꽃”이라며 순간에 명멸하는 사랑의 강렬한 존재감을 장미에 투사한다. 그러나 예이츠와 엘리엇, 조이스 등을 거쳐 조르주 바타유에 오면 우리는 그토록 아름답고 고귀한 장미가 “천사의 모습을 하고 서정적인 순결함을 설파하며 잠시 현실을 모면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퇴비의 악취 속에서 피어난다”는 잔인한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미술 전공자인 지은이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부터 마네의 <올랭피아>와 조지아 오키프의 여러 그림들, 그리고 르네 마그리트의 <마음으로 부는 바람>에 이르기까지 미술 작품들에 등장하는 장미의 다양한 상징 역시 흥미진진하게 설명한다. 이 가운데 네덜란드 화가 얀 다비드 데 헴의 <해골과 책과 장미가 있는 바니타스 정물화>(1630)는 활짝 핀 장미 꽃송이를 해골 및 낡은 책과 병치시킴으로써 인생의 덧없음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블레이크의 시 ‘병든 장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얀 다비드 데 헴의 <해골과 책과 장미가 있는 바니타스 정물화>(1630).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은이는 이와 함께 더 아름답고 화려한 꽃을 얻기 위한 육종학자들의 노력, 새로운 종의 탄생과 이름 짓기, 저작권과 특허법, 장미 축제와 향수 산업, 장미 식물 내부에 전자회로를 ‘재배’ 및 ‘이식’해서 탄생시킨 식물 사이보그, 밸런타인데이로 대표되는 장미 산업이 남기는 탄소 발자국에 관한 이야기까지 빠짐없이 책에 담는다. 소비 문화의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는 것이 장미의 애초 의도는 아니었을 터. 그러나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욕구를 이용해서 생존과 진화를 거듭해 온 것은 확실히 장미의 능력이라 하겠다. “장미가 단순히 인간에 의해 착취당한다기보다 장미 스스로 진화의 기회를 얻기 위해 인간을 조종해 온 자율적이고 지능적인 유기체라는”, 지은이의 ‘이기적 유전자’ 식 상상은 그런 점에서 솔깃하게 다가온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