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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낭독하려고 쓴 소설입니다, 왜 우는진 모르고요 [책&생각]

등록 2023-07-07 05:01수정 2023-07-07 09:42

소설가 김연수, 20편 묶은 새 소설집
강연 대신 낭독회용 쓴 작품 대부분

작가와 독자 나눈 ‘진짜 목소리’로
“모든 질문이 감탄으로” 전이되고
소설가 김연수(53)는 2021년부터 강연이나 북토크 제안이 들어오면 낭독회로 바꿔보고자 했다. 4일 <한겨레>에 말하길, 독자 청중들이 “원하는 게 (질문에 대한) 답 자체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진 레제 제공
소설가 김연수(53)는 2021년부터 강연이나 북토크 제안이 들어오면 낭독회로 바꿔보고자 했다. 4일 <한겨레>에 말하길, 독자 청중들이 “원하는 게 (질문에 대한) 답 자체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진 레제 제공

너무나 많은 여름이
김연수 지음 l 레제 l 1만6000원

소설가 김연수(53)의 이번 단편집은 품새나 만듦새가 남다르다.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만 20편이다. 독자 청중에게 먼저 낭독할 요량으로 쓴 짧은 소설들이 주를 이룬다. 전국 각지 책방이나 도서관에서 강연·북토크를 요청해오면 역으로 낭독회를 제안하여 찾아간다. 2021년 10월부터 지난달,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어나더페이지, 김해 숲으로된성벽, 광주 사이시옷, 파주 행복한책방, 창원 주책방 등지에서 그는 그렇게 준비한 자신의 소설을 읽.는.다. 1시간에 두 편 정도. 작가 말로 마무리한 뒤 질문을 받는 대신 거꾸로 청중들의 말을 청해 듣.는.다. 전부에게 말이다. 20명 청중만 해도 모두 듣자 하면 3~4시간이 흐.른.다.

읽고 듣는 이들 사이로 시간만 흐르는 건 아니다. 작가와 독자의 ‘진짜 목소리’가 오가고, 소설가의 ‘진짜 쓸모’라는 것도 기웃대던 모양이다.

“아, 이 대목에서 왜 우시지?! 그랬어요. 어떤 부분, 문장 한두 줄에 자신의 상황이 맞물려서 그런 걸 텐데… 낭독회를 할수록 알게 됐는데, 우리가 원하는 게 답 그 자체는 아닌 것 같아요.”(4일 <한겨레>와의 인터뷰)

낭독회 뒤 작가는 조금 달라지고, 소설은 조금 더 달라진다. 독자 청중들은 어땠을까. 그 경로에서 처음으로 매듭지은 소설집이 <너무나 많은 여름이>이다.

“가장 뜻밖의 반응을 보였던 낭독회 작품은…”

‘젊은 연인들을 위한 놀이공원 가이드’를 김연수 작가는 예 들었다. 놀이공원이 못마땅한 지수와 야간개장까지 놀다 가자는 재연의 10분이나 될 법한 대화가 이어진다. 둘은 이별했다 재회했다. 지수는 놀이공원 지도는 줄 서 기다리고, 막상 재미없어 실망하고, 인파에 끼여 불편한 순간들을 감추고 있다고 말한다. 다시 헤어질 각오로 드러낸 속내다. 재연의 생각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이공원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게 더 좋”다. 어떤 나쁜 기억은 뒷날 사라지고 좋은 기억들이 남을 가능성, 그 ‘꿈’을 믿는다. 이를테면 내일 불행해질 것 같아 오늘부터 불행한 사람들에게 지금 “자유이용권이 있다면 자유롭게 이용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다. 그러기로서니 이 낭랑한 청춘 연애담을 (엿)들으며 주로 30대이던 청중들은 왜 그리 울었을까.

작가가 웃으며 말하길 “소설 쓰면서 울리겠다 이런 의도 없었다”는데도 말이다. 작가 손을 떠난 ‘풍화에 대하여’에 한 단서가 있다. ‘젊은 연인들을…’이 짧고 메타포가 강한 잠언적 이야기라면 ‘풍화에 대하여’는 완연히 소설적이다.

1. 학부생 지훈은 대학강사 정현진과 수업 중 만나 연인이 된다. 얘기하고 안고 몸의 말들까지 서로 더듬어 듣는다. 둘은 석모도로 여행 간다. 학내 나쁜 소문이 퍼질 무렵이다. “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들”이 “싫지 않다”는 현진. 지훈은 좋아하던 가곡집 <겨울 나그네> 카세트테이프에 현진의 말을 녹음하겠다 한다. 이 순간이 두 사랑의 정점이므로, 이후는 어떤 말이든 관계가 ‘풍화’되는 소리이겠다. 건축학 전공자인 현진은 말한다. “만들어진 모든 것들은 풍화되어야만 영혼이 드러나게 돼 있어. 폐허마다 영혼이 드러나. (…) 이 폐허는 끝이 아니야. 이건 이 집의 가장 어린 영혼, 새로운 시작이야….”

2. 예상대로 대가는 혹독했다. 현진은 학생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강단에서 쫓겨난다. 지훈도 휴학한다. “소실점으로 사라지고 있는” 듯한 시절, 지훈은 테이프를 반복하여 듣는다. 영화들이나 본다. ‘그녀와 자신 사이에 일어난 일은 지금까지 인류가 수없이 되풀이해온 일,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는 이야기, 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지훈이 얻은 것은 뭘까. 바로 “기억되는 것들”이다.

3. 20년이 지난 어느 날 지훈은 현진의 연락을 받는다. 자신은 병들었으며 곧 또 입원할 참인데 코로나로 면회가 차단된다고, 살고 있는 경주에 지훈이 다녀가게 되면 보자고. 경주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 날 현진은 나타나지 ‘못’한다.

지훈이든 현진이든 3을 안들 1을 피할 것인가. 이 소설집은 표제작 ‘너무나 많은 여름이’부터 이 질문을 주요하게 나누고 있다. 지난해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현재가 미래를 이미 ‘기억’하고 있는 데 따른 결과라는 메시지로 내다보았다면, 이번엔 그 과거의 알고 보니 애틋한 기억이 미래 자체라고, 과거로서 미래는 두렵지 않다고 돌아다보는 셈이다. 2를 알고도 1을 피하지 않았다는 엄연한 사실로서 말이다.

“근데 도대체 왜 우는 것인지…”

김연수는 <한겨레>에 말했다. “어떤 분은 10년 전 대학생 때 사인을 받으며 제게 ‘오래 사세요,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라고 했다고 해요. 낭독회 때 그분이 이제 그 말을 자기한테 돌려주고 싶다며 울먹거려요. 사연은 알 수가 없어요.”

단 하나, 삶을 염세하고 의심케 하는 숱한 질문들 또한 스스로 ‘풍화’되고 만다는 사실만 분명하다. 풍화된 그 지경이 곧 그 질문이 구해온 답이기도 하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겪은 어머니의 죽음을 처음 작품(‘첫여름’ ‘그사이에’ 등과 함께)에 불러내고 자신의 아이를 등장시킨 ‘너무나 많은 여름이’의 한 구절과 맞닿는다.

“오랫동안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답을 알지 못하면서도 마치 아는 것처럼 군 적도 많았고, 답을 알아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말한 적도 있었다. …답을 제시하는 사람의 자리에서 내려와 지켜보고 돌보는 사람이 될 때 모든 질문은 감탄으로 바뀐다.”

질문이 감탄으로 변이되는 마법이라면 ‘저녁이면 그냥 걸었다’에서 올돌하다. 경주행 수학여행 버스사고로 아이를 잃은 서지희는 ‘그때 OO만 했다면’이란 ‘가정의 지옥’에 자신을 가뒀다가 ‘나는 왜 살아 있는가’ 묻고 또 묻는다. ‘죄책감의 바다’에서 표류하다 불쑥 그 잘난 경주에 가보고자 한다. 첨성대를 등대 삼아 계림 가는 어스름 길. 멀리 옛 무덤 위로 뜬 보름달은 천년 전의 것과 같았으니 웃는 관광객들 사이 서지희는 혼자 운다.

“그래서 좋았다는 거예요. 제 말은, 아무도 제가 우는 줄을 몰라서. 여러분도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우셔도 됩니다. (…) 그렇게 경주에 내려와 살게 됐지요. 그리고 저녁이면 마냥 걸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얼마든지 걸어도 좋으니까요.”

이 글귀들을 김연수는 읽고 독자 청중은 듣고 말하고 왜인지 웃고 울었다는 거다. 그렇게 코로나 팬데믹도 지나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소설가 김연수. 2020년 &lt;한겨레21&gt;과의 인터뷰 당시.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소설가 김연수. 2020년 <한겨레21>과의 인터뷰 당시.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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