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과학사가 야마모토 요시타카
근대 과학사 3부작 마지막 책 완역
150년 걸친 그리스 우주론 해체로
17세기 과학혁명의 문 열려
근대 과학사 3부작 마지막 책 완역
150년 걸친 그리스 우주론 해체로
17세기 과학혁명의 문 열려
일본의 과학사가 야마모토 요시타카. 위키미디어 코먼스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김찬현‧박철은 옮김 l 동아시아 l 각 권 2만3000원 야마모토 요시타카(82)는 근대 과학사 연구에서 걸출한 업적을 낸 일본의 과학사가다. 야마모토의 과학사 연구는 <과학의 탄생: 자력과 중력의 발견> <16세기 문화혁명>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이라는 3부작으로 갈무리됐는데, 이 3부작의 마지막을 이루는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이 세 권으로 나뉘어 우리말로 완역됐다. 이로써 야마모토의 과학사 3부작을 모두 한국어로 읽을 수 있게 됐다. 3부작 첫 책 <과학의 탄생>이 17세기 유럽 과학혁명을 이끈 동력이 ‘자력과 중력의 발견’에 있음을 논증했다면, <16세기 문화혁명>은 과학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직인‧상인들의 연구와 발견이 과학혁명에 도화선이 됐음을 입증했다.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은 <16세기 문화혁명>에서 다루지 않은 주제, 곧 이 시기에 어떤 이론적 경로를 거쳐 세계관에 일대 변혁이 일어나 과학혁명으로 이어졌는지를 탐사한다.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초엽까지 150년에 걸친 그 변혁의 전모를 살피는 것이 책의 내용이다. 이 책이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근대 이전 유럽인의 세계관을 지배하던 고대 그리스의 사상, 곧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은 철학적 사유로 우주의 구조와 원리를 설명하는 것인 데 반해,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은 관측과 계산으로 천체의 운행과 변화를 예측하는 작업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의 기초가 되는 것은 흙‧물‧공기‧불이라는 원소가 물질세계를 구성한다는 4원소설이다. 이 원소들 가운데 가장 무거운 흙이 뭉쳐 지구를 이룬다. 또 그다음으로 무거운 물이 지구 표면을 덮는다. 이어 물보다 가벼운 공기가 공중을 채우고 가장 가벼운 불이 지구의 바깥층을 감싼다. 더 주목할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원적 우주상’이다. 우주는 크게 보아 ‘달 아래 지상세계’와 ‘달 위의 천상세계’로 나뉘어 있다. 천상세계는 수성-금성-태양-화성-목성-토성의 순서로 층을 이루고 그 바깥을 항성천이 둘러싸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우주의 구조를 ‘양파 모양’으로 이해했다. 지구를 중심으로 한 지상세계가 양파의 핵이라면 그 바깥을 달의 층이 감싸고, 이어 수성부터 토성까지 각각의 층이 쌓인 뒤 마지막을 붙박이별들의 항성천이 덮는다. 항성천이 양파의 겉껍질인 셈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에서 한 번 더 주목할 것은 달과 태양과 행성을 포함한 모든 별들이 양파의 각 층 곧 ‘천구’에 붙박여 있다는 점이다. 달이나 태양이 직접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이 별이 박힌 천구들이 각자 도는 것이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항성천 바깥에 ‘부동의 원동자’ 곧 ‘최초의 움직임을 주는 신‘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가장 먼 항성천이 회전하면 그 힘을 받아 그 안쪽의 천구가 도는 방식으로 달의 천구까지 회전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서 4원소로 이루어진 지상세계는 생성‧변화가 끊이지 않는 가변 세계인 데 반해, 천상세계는 에테르라는 제5원소로 이루어진 불변 세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천상의 모든 별들이 완벽한 원운동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에는 명백한 약점이 있다. 그 약점 가운데 하나가 일식 문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식이 지구와 태양 사이에 달이 들어와 일어나는 현상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왜 어떤 때는 ‘개기일식’이 일어나고 다른 때는 ‘금환일식’이 일어나는지를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은 설명하지 못한다. 천구가 지구를 중심으로 삼아 완벽한 원운동을 한다면, 지구에서 보는 달의 크기가 달라져선 안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이 태어났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행성과 항성이 원운동을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을 받아들였지만, 여기에 몇 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그 조건 가운데 하나가 ‘이심원’다. 이심원이란 태양을 포함한 행성들이 지구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을 중심으로 삼아 원운동을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게 이심원을 도입하면 일식이 달라지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는 12세기 이후 서유럽 세계에서 재발견됐다. 아랍 세계를 거쳐 고대 학문이 다시 들어온 것이다. 이때 먼저 유럽인에게 받아들여진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은 14세기에 기독교의 공인을 받았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에 위배되는 주장을 담고 있었기에 15세기 후반에야 수용될 수 있었다.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레기오몬타누스(1436~1476)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저 <알마게스트>를 처음 번역했다. 레기오몬타누스를 통해서 유럽 천문학은 고대 천문학 수준을 회복했고 이후 급속히 발전했다. 그 발전이 도달한 첫 번째 거대한 전환점이 16세기 중엽 코페르니쿠스 혁명이었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지구중심설을 태양중심설로 바꾼 것으로 요약되지만, 핵심은 지구를 행성의 대열에 배치했다는 데 있다. 이 배치와 함께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정했던 지상세계와 천상세계의 위계가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다음 세대의 덴마크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는 1570년대에 신성과 혜성의 출현을 관찰해 아리스토텔레스 우주관에 또 한 번 타격을 입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불변의 에테르 세계라고 보았던 천상세계에서 혜성과 신성이 출현해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혜성이 마음대로 천상세계를 날아다닌다면 양파처럼 하늘을 겹겹이 감싼 단단한 천구도 없는 셈이다. 천구가 사라진 이상, 이 천상의 별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을 다른 곳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였다. 케플러는 태양의 힘이 다른 행성을 움직인다는 중력 개념에 처음으로 도달했다. 이 힘의 개념에 의지해 케플러는 행성들이 원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달걀 모양의 타원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리하여 우주의 대칭성이 깨졌다.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은 최후의 일격을 당했다. 케플러의 이 발견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것이 17세기 뉴턴의 혁명이었다. 150년에 이르는 이 세계관의 전환을 통해 고대의 우주론이 붕괴하고 근대 물리학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