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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인구위기 돌파의 비결, 아이는 사회가 낳고 기른다는 생각 [책&생각]

등록 2023-07-21 05:00수정 2023-07-21 09:20

1934년 세계 최저 출생률 기록한 스웨덴
뮈르달 부부 강력한 분배 정책 제시

사회구조 및 가족제도의 변화에 맞춰
아동수당·무상의료 등 복지정책 제안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인구 위기

스웨덴 출산율 대반전을 이끈 뮈르달 부부의 인구문제 해법

알바 뮈르달·군나르 뮈르달 지음, 홍재웅·최정애 옮김 l 문예출판사 l 2만4000원

복지강국 스웨덴을 대표하는 사회학자 알바 뮈르달(1982년 노벨평화상 수상)과 정치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197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이 함께 쓴 사회과학의 명저 <인구 위기>가 국내 최초로 번역돼 출간됐다. 1934년에 뮈르달 부부가 쓴 이 책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았던 스웨덴에 과감한 사회개혁 방안을 제시해 스웨덴이 인구 위기의 파고를 넘을 수 있도록 만든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국내 인구문제 및 복지 관련 전문가들은 번역기를 돌려 이 책을 봐왔는데, 홍재웅 한국외대 스칸디나비아어과 교수와 그의 아내이자 스웨덴여성교육협회 서울지부 회장을 맡고 있는 최정애 통번역사가 공동 번역해 한국 독자들도 이 책을 우리말로 만날 수 있게 됐다.

책은 스웨덴 인구 현황과 추세를 살핀 뒤, 출산율 저하의 배경으로 △사회계층별 임금과 소득의 불균형 △도시의 과밀화된 주거 환경 △저소득층의 먹거리 부족과 영양 불균형 △실업과 실업 위험, 농업 위기 등을 꼽고 각종 통계와 자료를 토대로 당시 스웨덴 국민 생활수준을 폭넓게 분석한다. 뮈르달 부부는 스웨덴 시민들이 생활수준 향상을 목표로 하는 집단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데, 자녀 양육이 생활수준 향상을 방해한다고 인식돼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짚었다.

사회민주주의자였던 뮈르달 부부는 생산력 증대와 함께 강력한 분배 정책을 동시에 실시해야만 인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이들은 특히 강력한 분배 정책의 핵심으로 ‘출산과 양육에 드는 비용의 사회화’를 제시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다자녀 가정의 주거 보조금 지급 △모든 아동에 대한 무상 의료 △무상 점심 급식 △집에 머무는 아이들 일부 식자재 가격 할인 △무상 학교교육 △공공 유아원, 탁아소, 유치원, 방과후교실, 여름학교 등을 고품질로 무상 제공 △재능 있는 청소년에게 장학금 및 생활비 제공 등을 꼽았다. 이외에도 여성의 출산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지급하고, 여성이 출산으로 휴직하는 기간의 임금도 보조해줘야 한다고 했다. 또 산모의 충분하고 자율적인 휴가를 보장하고 출산한 여성이 다시 일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사회학자 알바 뮈르달과 정치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은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를 열렬히 옹호하고 관련 정책을 내놨다. 1934년 &lt;인구 위기&gt;를 함께 쓴 부부는 강력한 분배 정책으로 ‘출산과 양육에 드는 비용의 사회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스웨덴을 대표하는 사회학자 알바 뮈르달과 정치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은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를 열렬히 옹호하고 관련 정책을 내놨다. 1934년 <인구 위기>를 함께 쓴 부부는 강력한 분배 정책으로 ‘출산과 양육에 드는 비용의 사회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출산과 양육의 사회화’를 인구 위기 해법으로 제시한 이유는 당시 스웨덴의 사회구조 변화와 가족제도 변화 때문이다. 스웨덴 사회는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농경 산업이 쇠퇴하고 도시화·산업화가 진행 중이었다. 이로 인해 더 이상 아이들이 집에서 스스로 자랄 수 없었고, 아이 역시 집안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여성들 역시 원시 경제체제에서 갖고 있었던 경제적 기능을 전문화·분업화 사회 속에서 상실하게 되면서 노동시장에 참가할 필요성이 늘었다. 게다가 여성해방운동이 등장하면서 정치적 시민권과 경제적 독립에 대한 여성들의 욕구는 더 높아졌다. 뮈르달 부부는 이러한 사회구조 및 가족제도의 변화에 따른 사회 구성원들의 ‘적응’의 결과가 저출산이고, ‘양육의 사회화’를 통해 각 개별 가정의 자녀 양육 부담을 덜어줘야 미래를 희망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거의 100년 전에 스웨덴에서 이런 과감하고 대담한 사회개혁 방안이 제시됐다는 것에 한국 독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는 2010년이 되어서야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에서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 담론이 등장했고, 2017년 중앙정부가 ‘3~5살 누리과정’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결정하기 전까지 해마다 ‘보육 대란’ 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동수당 제도가 도입된 것도 불과 5년 전이다.

책에 따르면 스웨덴에서는 뮈르달 부부가 제시한 방안을 44년이나 장기집권한 사민당이 적극적으로 사회정책화했다. 1937년 저소득층에게 아동수당이 도입된 뒤 10여년이 지나 전면적으로 확대됐다. 또 1946년엔 주부 휴가제를, 1966년엔 9년 의무교육제를 도입했고, 1968년엔 아동가정 주택 보조비를 지급하는 등 스웨덴 사회는 복지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왔다. 그 결과 1934년 1.67명에 머물렀던 스웨덴의 합계출산율(여성 한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이 1940년대부터 2명을 넘어섰고 최근까지도 1.5명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2022년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를 기록한 한국에 견주면 놀라운 성과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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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맨 뒤에는 경제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이태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의 해제가 함께 실려 있다. 이 원장은 <인구 위기>에 대해 “지금의 대한민국이 인구 문제를 대하는 맥락에 비춰봤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버릴 것이 없는 인구 문제 해법서”라고 평가했다. “인구 문제가 갖는 위기로서의 심대성, 이 문제의 해법을 구함에 경제, 산업, 문화, 인식 등 전 영역을 아우르며 바라보는 전체성, 해결책을 제시할 때 그 속도나 깊이, 정도의 측면에서 보여주는 담대성,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사회상에 대한 명료성”이라는 측면에서 이 원장은 이 책을 높이 평가했다. 책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고 당시 스웨덴 사회에 대한 소개와 한국 상황에 대한 적용까지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이 교수의 해제를 먼저 읽은 뒤 본문을 읽으면 더 효과적인 독서법이 될 수 있겠다.

얼마 전 국내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실업급여 축소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연 공청회에서 “여성들, 청년들이 실업급여로 샤넬 선글라스 사고 해외여행을 간다”, “달달한 ‘시럽(Syrup)급여’”라는 발언이 나와 논란이 됐다. 사회계층별로 국민 생활수준을 세밀하게 뜯어보고 강력한 재분배 정책을 강조했던 뮈르달 부부가 환생한다면, 이런 현실을 겪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이러다가는 다 죽어!”(영화 <오징어 게임>의 등장인물 오일남의 대사)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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