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어던’ 토대가 된 홉스 첫 정치철학 저작
영국의 근대 정치사상가 토머스 홉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자연과 정치
토머스 홉스 지음, 김용환 옮김 l 아카넷 l 2만4000원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가 근대 정치사상의 새벽이라면, 토머스 홉스(1588~1679)는 그 사상의 아침을 연 사람이다. 사회계약과 인민주권은 홉스의 사상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홉스의 정치사상을 대표하는 저작으로 〈시민론〉과 함께 〈리바이어던〉이 꼽히는데, 이 저작들의 토대가 되는 작품이 〈법의 기초〉다. 홉스 정치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이 책이 홉스 전문가 김용환 한남대 명예교수의 손을 거쳐 우리말로 처음 번역됐다. 영국 서남부 시골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홉스는 어린 시절에 벌써 천재성을 드러냈다. 초등학교 때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익혔고 15살에 옥스퍼드대학에 입학했다. 홉스의 언어적 재능은 대학 입학을 앞두고 그리스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를 라틴어로 번역한 데서 확인된다. 홉스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것은 대학 졸업 뒤 윌리엄 캐번디시 가문의 가정교사로 들어간 일이다. 홉스의 청장년 시기는 캐번디시의 아들과 손자를 가르치며 자기 학문의 기초를 닦는 수련기였다. 홉스는 이 시기에 여러 차례 유럽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이때 갈릴레이를 비롯해 당대 최고의 학자들을 만나 물리학과 기하학에 눈뜨고 학문 방법론을 터득했다. 이 긴 학습기를 지나 50대에 이르러서야 홉스는 학자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첫 저작이 바로 1640년에 쓴 〈법의 기초〉다. 홉스가 이 책을 쓰던 시기는 영국에서 의회파와 왕당파 사이 갈등이 급격히 고조되던 때였다. 홉스는 단호하게 왕당파의 편에 섰다. 홉스의 그 저서도 의회파에 맞서 왕당파를 옹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이 책을 쓴 직후 영국이 내전의 위기에 휩싸이자 홉스는 프랑스로 망명해 그곳에서 10여년을 보냈다. 그 사이 영국은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청교도 혁명을 겪었고, 망명지에서 홉스는 〈시민론〉(1642)과 <리바이어던〉(1651)을 써서 자신의 정치사상을 더욱 정교하게 제시했다. 홉스 학문 방법의 특징은 자연-인간-사회를 수미일관한 체계로 쌓아올린다는 데 있다. 홉스는 자연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를 물체(body)라고 부르는데, 이 물체가 인간의 경우에는 신체로 나타나고, 그 신체들이 모여 사회 또는 국가라는 거대한 신체를 구성한다. 물체(신체)의 이 세 존재 상태를 기술할 때 홉스가 쓰는 것이 ‘분해와 결합’의 방법이다. 고장 난 시계를 예로 들어보자. 이 시계를 최소 단위까지 분해한 뒤 거기서 고장 난 부품을 찾아내 교체하고 다시 하나씩 짜 맞춰 본래대로 조립하는 것이 분해와 결합의 방법, 다른 말로 하면 분석과 종합의 방법이다. 이 방법을 사회라는 신체에 적용해 살피는 것이 홉스의 ‘정치론’이고, 이 정치론을 처음으로 논술한 저작이 바로 〈법의 기초〉다. 〈법의 기초〉에서 홉스는 인간 본성을 꼼꼼히 분석하는 데서 시작해 ‘자연상태’를 서술하는 데로 나아간다. 홉스는 자연상태를 모든 인간이 평등한 상태이자 그 인간들 각자가 자기 생명을 지킬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저지르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는 보편적 틀이 없는 이런 상태에서 인간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자연상태는 곧 전쟁상태다. 그러나 인간은 본성적으로 평화를 바라기에 전쟁상태를 한없이 방치할 수 없다. 인간들은 이성의 명령인 ‘자연법’에 따라 전쟁상태를 끝내고 평화를 가져올 계약을 맺는다. 이것이 홉스가 말하는 사회계약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홉스가 이 사회계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도입한다는 사실이다. 전쟁상태를 끝내려면 사람들이 모여 집단적인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려면 다수의 동의를 구하는 민주적 방식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합의는 전쟁상태를 중단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민주적 방식으로 소수 혹은 일인에게 통치권을 몰아주는 정치체제를 세운다. 그 결과가 귀족정 또는 군주정이다. 홉스는 여기서 군주정을 최종 방안으로 옹호한다. 군주정이 다른 어떤 체제보다 결함이 적다는 것이 홉스가 내세우는 근거다. 다수가 투표를 통해 각자의 권리를 내려놓고 주권을 군주에게 양도하면 그 결과로 절대군주정이 성립한다. 이렇게 민주적 합의를 앞세우는 〈법의 기초〉의 설명 방식은 〈리바이어던〉의 설명 방식과 확연히 다르다. 〈리바이어던〉에서 홉스는 원초적 민주주의에 관한 서술을 대폭 생략해 그 흔적만 남겨두었다. 〈법의 기초〉-〈시민론〉-〈리바이어던〉의 집필 과정은 홉스 정치사상이 개축되고 증축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양상을 알려주는 것이 종교 문제 서술이다. 종교에 관한 홉스의 서술은 뒤로 갈수록 비중이 커져 〈리바이어던〉에 이르면 책의 절반을 차지한다. 종교적 갈등이 영국 내전이 벌어지게 된 원인이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안전한 국가를 만들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 문제의 해법으로 홉스가 제시하는 것이 ‘교회 위에 국가가 있다’는 원칙이다. 신앙의 쟁점을 결정하는 것은 통치권력이며 그리스도교 왕국에서 신에 대한 복종은 통치자에 대한 복종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홉스의 논리다. 홉스는 후에 이런 주장을 상술한 〈리바이어던〉을 유럽에 망명 중이던 찰스 2세에게 헌정했다. 하지만 찰스 2세는 홉스의 헌정을 거부했다. 인민의 민주적 합의를 통해 절대왕권이 성립한다는 사회계약 원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대신에 찰스 2세는 인민에게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왕권신수설을 채택했다. 바로 여기에 홉스 정치철학의 근대성이 있다. 홉스가 제시한 사회계약은 뒤에 존 로크와 장자크 루소를 거쳐 인민주권론으로 확립되고, 인민의 뜻을 배반하는 통치자는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로 나아간다. 그 논리의 실마리가 이미 〈법의 기초〉에 들어 있다. “인민에 대한 통치자의 의무”를 이야기하는 대목이 그 실마리를 보여준다. 여기서 홉스는 “통치자보다 상위에 있는 법은 인민의 안전이다”라고 언명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선익을 보호하는 데 통치자가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런 노력을 다하지 못한 통치자는 인민에게 버림받을 수 있음을 논리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 반동적 주장이 정치의 진보를 이끄는 역설을 홉스의 저작은 품고 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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