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미국 대통령 집무실에서 만난 KGB 이중 첩자 고르디옙스키(오른쪽)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레이건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당신이 누군지 압니다. 당신이 서방을 위해 한 일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열린책들 제공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이중 스파이, 올레크 고르디옙스키
벤 매킨타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l 열린책들 l 3만2000원 올레크 고르디옙스키는 냉전 시대 소련의 첩보기관 케이지비(KGB, 국가보안위원회) 소속으로 영국 비밀정보부 엠아이6(MI6)을 위해 활동한 이중 첩자였다. 그는 1974년부터 무려 10년이 넘도록 KGB의 핵심 정보를 영국으로 빼돌렸고, 그러면서도 KGB의 신임을 받아 이 기관의 런던 지부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미국 첩보기관 시아이에이(CIA, 중앙정보국) 소속 KGB 이중 첩자에 의해 신분이 들통나는 바람에 모스크바로 소환되어 조사를 받던 중 기적처럼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스파이와 배신자’는 소련과 영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첩보기관들이 얽히고설켜 빚어낸 이 영화 같은 실화를 담은 논픽션이다. 영국의 언론인 겸 작가 벤 매킨타이어가 3년에 걸쳐 스무번 넘게 고르디옙스키를 인터뷰하고 관련자들 역시 취재해서 쓴 이 책은 2019년에 첫 방영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스파이들의 전쟁’ 첫번째 에피소드 ‘세상을 구한 남자’의 원작이기도 하다. 책은 1985년 5월 모스크바로 소환된 고르디옙스키가 아파트로 들어서면서 자신이 KGB의 감시 대상이 되었음을 확인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그런 상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시간순으로 서술한다. KGB 요원인 아버지와 형을 좇아 그는 자연스럽게 KGB 요원이 되었다. “KGB 그 자체”라 해도 무방할 그의 삶에 균열이 생긴 것은 그가 1966년 1월 덴마크에 부임하면서였다. 그곳에서 목격한 서구 사회의 풍요와 자유는 헝가리 봉기와 프라하의 봄, 베를린 장벽 설치 등에서 잇따라 확인한 소련의 억압적 체제와 대비되었다.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에 KGB 소속이었던 아버지가 저지른 범죄와 고르디옙스키 자신의 반항적 성격도 선택에 한몫했다.
KGB 제복 차림의 올레크 고르디옙스키. 야망 있고, 충성스럽고, 고도의 훈련을 받은 요원이었다. 열린책들 제공
2007년 영국 런던 버킹엄 궁전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여왕의 생일 행사에서 고르디옙스키(오른쪽)는 ‘영국의 안보에 기여한 공로’로 세인트 마이클 앤드 세인트 조지 훈장 3등급(CMG)을 받았다. 열린책들 제공
은퇴한 이중 첩자 올레크 고르디옙스키는 소련에서 탈출한 직후 이사한 영국의 어느 근교 도시, 별 특징 없는 거리에 있는 안가에서 가명으로 살고 있다. 열린책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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