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방의 미친 여자들
여성 잔혹사에 맞선 우리 고전 속 여성 영웅 열전
전혜진 지음 l 한겨레출판 l 1만8000원
순진한 규중 아가씨였던 ‘당금애기’는 승려에게 속아 혼인도 하지 않은 채 임신을 하게 된다.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은 당금애기를 뒷산 돌구멍에 가둬 죽이려 한다. 그러나 당금애기는 살아남아 세 아들을 낳아 훌륭하게 성장시키고 온갖 핍박과 고초를 넘어 세상의 모든 아이를 점지하고 산모를 돕는 여신, 삼신이 된다.
서구 고전의 남성 영웅들은 좋은 혈통을 타고나 초월적 힘과 용기를 지니고, 운명이 정한 시련에 따라 먼 길을 떠난다. 수많은 모험과 도전으로 고난을 겪고 귀환한 이들은 영웅으로 추앙받거나 신이 된다. 여성 영웅은 어떠한가. 저명한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말마따나 여성은 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다. 탄생 자체가 역경이기 때문이다.
‘규방의 미친 여자들’은 우리 고전 속 여성 캐릭터들을 분석해 그동안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여성 영웅의 원형에 대해 들려준다. 유교 가부장제 질서가 공고했던 조선과 그보다 앞선 고대에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은 그 자체로 고난이다. 딸을 반기지 않는 아버지라는 ‘숙명적 비극’을 안고,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버려진다. 사회는 딸들의 이러한 고난에 철저히 무관심하고, 무사히 성인으로 자라나도 결혼과 출산, 시집살이라는 또 다른 장애물이 펼쳐진다.
수많은 좌절이 있었겠지만 꺾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바리데기’의 바리, ‘심청전’의 심청은 가족을 구하고 신이 되었으며 ‘홍계월전’의 홍계월, ‘이학사전’의 이현경은 남성을 압도하는 능력으로 나라를 구한다. ‘방한림전’은 두 명의 여성이 결혼해 대안 가족을 이루는 모습을 그려 아예 가부장제를 전복시킨다. 계보를 몰랐을 뿐, 여성 영웅신화는 이미 공고했다.
김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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