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도 가벼웠던 10년간의 질주
척 클로스터만 지음, 임경은 옮김 l 온워드 l 2만5000원 1990년 봄, 뉴 키즈 온 더 블록은 매직 서머 투어를 시작해 303일 동안 57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때 영화 중 최고의 흥행작은 ‘사랑과 영혼’이었으며, 유령은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라 패트릭 스웨이지가 연기했다. 그렇게 자동 조종 장치로 움직이는 비행기 같았던 80년대는 1991년 9월이 되자 산에 충돌한다. 너바나의 앨범 ‘네버마인드’(신경꺼)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90년대’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뒤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기까지 10년간의 질주를 다룬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유명해지고 싶지 않음”으로써 유명해졌고, 엑스(X)세대의 교과서격인 영화 ‘청춘 스케치’에서 이선 호크가 “나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라는 어떤 명령도 따르지 않아”라고 말했던 시대, 쿨함이 세상의 전부였던 때다. 저자는 1990년대 수많은 사건을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장면들처럼 소환해 미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가로지르고 재구성한다. 블록버스터를 양산하던 미국 영화 제작자 시대의 종말, 약물 복용을 통해 흥행의 근육을 불살랐던 야구와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뜬금없던 야구 전향, 전화접속 모뎀이 ‘지지직’거리며 열어준 인터넷 이야기 등. “지금 돌이켜보면 1990년대부터 세상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통제와 구제가 불능할 만큼 정신없지는 않았다. 90년대는 20세기와 작별을 고하는 시기이자, 인간이 기술을 지배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대이기도 했다.” 최첨단 인공지능 시대에 ‘무차별 흉기 난동’과 ‘엉망진창 새만금 잼버리’를 겪는 우리에게, 그 시절은 더 아련하게 다가온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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