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철학자 옹프레의 예술론
서양 예술사 비판적 읽기 안내
예술과 사기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
외국어 배우듯 예술 언어 익혀야
서양 예술사 비판적 읽기 안내
예술과 사기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
외국어 배우듯 예술 언어 익혀야
프랑스 철학자 미셸 옹프레. 위키미디어 코먼스
예술 입문, 라스코에서 쿤스까지
미셸 옹프레 지음, 변광배 옮김 l 서광사 l 2만원 미셸 옹프레(64)는 플라톤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 거의 모든 기성 철학을 가차 없이 공격하는 프랑스 철학자다. 도발성 강한 언어를 난사하기에 ‘니체를 따르는 반란의 철학자’로도 불린다. ‘예술의 이유’는 이 철학자가 반역의 시선으로 읽어낸 서양 예술사이자 예술 읽기의 길을 안내하는 예술감상론이다. 옹프레는 서양 예술사를 수많은 도판을 들고 단거리 선수처럼 주파한 뒤 20세기 이후 현대 예술의 허실을 해부한다. 이 책은 먼저 예술의 고전적 정의를 문제로 삼는다. ‘미학’이라는 말을 창안한 18세기 독일 철학자 알렉산더 바움가르텐 이후 ‘아름다움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예술이다’라는 등식이 정착됐다. 그런데 정말 아름다움의 구현이 예술의 목표인가? 옹프레는 이런 정식을 부정한다. 예술이 추구하는 것은 아름다움 자체가 아니라 ‘의미’다. 예술가는 미의 이상을 구현하는 자가 아니라 작품에 의미를 실어 전달하는 자다. 옹프레가 주목하는 것은 그 ‘의미’가 작품에 직접 드러나지 않고 여러 상징과 비유를 통해 암시적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예술작품을 잘 감상하려면 그 작품이 놓인 시대적 맥락을 헤아려 작품 속의 상징과 비유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예술 언어에 익숙해져야 한다.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 외국어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듯이, 예술 언어를 모르면 작품의 의미는 파악되지 않는다. 이 책은 먼저 그리스 예술과 로마 예술을 비교해 두 예술에서 작품의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한다. 고대 그리스 조각 작품을 보자. 이 조각상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의 특징은 ‘젊은 육체의 우아함’이다. 아폴론이든 육상선수든 모두 젊음으로 빛나는 육체를 자랑한다. 그리스인들은 인간 존재의 가장 완벽한 순간을 응고시켜 그것을 작품에 담아내려 했다. 육체가 가장 우아하게 드러나는 때를 잡아 거기에 영원성을 부여하려 한 것이다. 반면에 로마인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진실’을 보았다. 로마 정치가 키케로를 새긴 흉상을 보자. 이 흉상의 키케로는 머리가 빠지고 주름이 잡힌 50대 남자이자 원로원 의원의 의상을 입은 원숙한 인간이다. “키케로의 진실은 시간·경험·전통과 함께 획득한 지혜 속에 있다.” 육체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른 순간을 포착하는 그리스 조각과 달리, 로마 조각은 시간의 흐름 속에 형성되는 삶의 참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대비에서 알 수 있듯, 시대마다 달라지는 ‘코드’를 찾아 해독하는 것이야말로 예술 이해의 핵심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수백년 동안 서양 예술을 지배한 코드 가운데 하나는 ‘유사성’이었다. 화가가 대상을 정확히 재현해낼 때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관념이다. 이 시기의 화가들은 인물과 풍경과 정물을 정밀하게 묘사했다. 18세기까지 지속된 유사성의 관념은 19세기 초반 사진이 발명된 뒤로 종말을 고했다. 회화는 대상을 재현한다는 오래된 목표를 사진에 넘기고 다른 목표를 찾았다. 그 결과가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인상주의다. 인상주의는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을 통해 드러나는 빛,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빛의 효과를 표현하려 했다. 인상주의와 함께 사물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대상을 보는 화가의 주관적 시선이 중요해졌다. 야수파와 입체파에 이어 등장한 20세기 추상화에서 사물의 구체성은 모두 폐기되고 붓질의 흔적만 남는다. 이렇게 모든 게 폐기된다면 흔적 자체의 폐기는 왜 안 되는가? 이 물음이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든다. 그 전환점에 선 것이 마르셀 뒤샹의 ‘샘’(1917)이다. 뒤샹은 남성용 소변기라는 ‘레디메이드’ 제품에 자신의 서명을 새겨 전시대에 올려놓았다. 사실상 아무런 작업도 하지 않은 이 ‘제품’을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 물음을 뒤로 남기고 뒤샹의 변기는 미술계의 공인을 받아 예술 작품으로 등록됐다. 기존의 모든 미술 형식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뒤샹의 작업은 일종의 쿠데타였다. “이 성공적인 미학적 쿠데타로 뒤샹은 서양 예술사를 둘로 나누었다.” 예술가가 어떤 개념을 품고 있느냐가 중요하지 그것을 어떻게 구현했느냐는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뒤샹 이후로 미술은 ‘개념의 창출’이 된다. 먼지와 시멘트부터 혈액, 소변, 대변, 심지어 화가의 신체까지 모든 것이 작품의 소재가 된다. 사람의 피로 소시지를 만들어 나누어주고 총으로 자기 몸을 쏘는 행위가 작품이 된다.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의 구분이 사라진다. 그 사태를 음악에서 보여주는 것이 존 케이지의 피아노곡 ‘4분33초’(1952)다. 이 연주 없는 연주의 4분33초를 초로 환산하면 273초가 되고, 273초는 영하 273도 곧 절대영도를 가리킨다. 모든 것이 얼어붙는 영점이야말로 예술의 죽음이다. 그러나 뒤샹 이후로도 화가들은 계속 그림을 그렸다. 그런 그림 중에는 뒤샹주의의 파멸을 선고하는 그림도 있다.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의 세 화가 질 아이요, 에두아르도 아로요, 안토니오 레칼카티가 1965년 공동으로 그린 8폭 그림 ‘사느냐 죽느냐 또는 마르셀 뒤샹의 비극적 최후’는 ‘샘’을 포함한 뒤샹의 작품들을 재현하고 그 사이사이에 화가 자신들이 등장해 뒤샹을 심문하고 살해하는 장면을 배치했다. 마지막 그림은 성조기로 덮은 뒤샹의 관을 앤디 워홀을 비롯한 뒤샹 후배들이 운반하는 것으로 끝난다. 뒤샹과 뒤샹주의가 미국식 상업주의 속에서 예술이 됐으나 결국은 자멸로 끝나고 말았다는 얘기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의 세 화가 질 아이요, 에두아르도 아로요, 안토니오 레칼카티가 1965년 공동으로 그린 8폭 그림 ‘사느냐 죽느냐 또는 마르셀 뒤샹의 비극적 최후’.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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