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 7주기를 맞은 작가 박지리(1985~2016). 2010년 등단 때 한겨레에 “만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림을 너무 못 그려”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3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단요는 자신을 대중에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수레바퀴 이후
단요 지음 l 사계절 l 1만5000원 이 소설은 가상의 현실을 다룬다. 아니다, 틀렸다. 이 소설은 현실을 가상한다. 낯선 현실이 적나라해지는 식이다. 가상해보자. 모든 이들의 인성 지수가 이마에 숫자로 나타난다면. 사회는 정의로워질까, 풍요로워질까. 먼저 물을 법하다. 인성을 점수화? 가당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우린 이미 서로를 출신, 학벌, 재력조차 인성 점수로 매겨오질 않았던가. 하물며 나의 애경사를 다녀간 지인들이 이후 부조금 적시된 봉투 이마에 떡하니 붙인 채 다가오더란 게 소시민들 내력이다. 그 아른거리던 현실 속 수치와 점수들이, 낯설긴 해도, 조금 더 적나라해진다 쳐보자. 도덕과 부도덕이 청색과 적색으로 계량화하는 수레바퀴 이미지(원판)가 모든 인간들의 머리 50㎝ 위에 떠 있다. 청색 비중이 커질수록 천국 갈 확률이 높아진다. 이 두 가지가 현실화한 지 1년째를 취재하는 르포작가의 1인칭 기록이 이 소설 형식이자 뼈대다. 각국 청색 비중 평균이 65% 전후인 시대, 강도 같은 중범죄를 처음 저지르면 5~15%가량 청색이 준다. 여러 통계조사를 포함해 다들 원판의 규칙에 접근하려 한다. 정연할 리 없다. “수레바퀴는 결과뿐만 아니라 정황과 동기를 감안합니다.” 청색률 99.4%에 이른 철학과 여교수의 설명인데, 그조차 종교적 고행이 적색을 줄이지 못하는 등의 사례를 사후적으로 짚을 뿐이다. 대형교회 목사들이 잠적한다. ‘믿음’보다 ‘처신’이 화두가 되고 철학이 인기 전공이 된다. 주식, 부동산 화제가 낄 틈이 없다. 인성논란에 휩싸였던 한 아이돌이 8할의 청색을 내보이며 화려하게 복귀하고, 반대로 평판 좋던 한 아이돌은 ‘지금껏 가식이었냐’는 공격에 휩싸여 자살한다. 정의감에서든 그 ‘평가질’에 동참했던 팬들? 지옥 갈 확률이 높아졌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법조인, 기업가는, 군중들은? 수레바퀴는 결국 거대사업 아이템이 된다. 수레바퀴 자체에 저항하는 무리, 청색을 단념한 자들도 생긴다. 소설은 도덕률의 숱한 딜레마를 지나 본원의 질문까지 흥미롭게 던진다. 새삼 도덕은 지상을 구원하는가. 미래의 질문까지 슬프게 던진다. 소설 말미, 한 여학생의 말이 옮겨질 때다. “아버지가 때리지 않아서 좋다고,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나서 좋다고, 엄마가 생계 걱정을 멈추고 이혼을 결심해서 정말 좋다고 했다. …사실은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어떤 사람들의 세계는 수레바퀴가 나타나기 전에도 그 이전의 방식으로 끔찍했다고 했다. …자신이 죽은 다음 지옥에 갈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은 원래부터 지옥이었다고…” 이런 가상들이 허황하지 않도록 작가가 섭렵한 자료들만큼이나 소설로서 이를 묻는 행위가 허황하지 않도록 작가가 홀로 다졌을 의지들이 돋보인다. 자료 출처 미주가 34개고 ‘작가의 말’은 더 단단하다. 제3회 박지리문학상을 받은 작가 단요의 장편이다. 전설만 남긴 채 요절한 작가 박지리(1985~2016)를 추모하기에도 좋은 계절, 때맞춘 작품이다. 기일은 9월28일.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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