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계절
웰레 소잉카 지음. 이완기 옮김
루비박스 펴냄. 1만원
웰레 소잉카 지음. 이완기 옮김
루비박스 펴냄. 1만원
‘공포영화의 계절’ 여름이 기다려지나? 기다릴 필요없다. 둘러보면 세상이 온통 ‘공포’ 아닌가. 핵, 테러, 전쟁, 쓰나미… 공포의 가면은 끊임없이 바뀌고, 심지어 이제는 ‘과자 공포’까지 등장했다.
아프리카 출신으로 첫 노벨문학상을 탄 월레 소잉카는 이처럼 일상 깊숙이 스며든 공포의 정체와 원인을 파고든다. 공포란 “외부의 지배 아래, 자신의 통제권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것”이다. 무차별 테러든, 지구를 침략한 외계 괴물이든 대상은 상관없다. 그러나 그 공포의 뿌리는 다르다.
소잉카가 보기에, 오늘날 공포를 유포시키는 근원은 테러조직이다. 9.11을 일으킨 알 카에다에 단호히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은 테러를 통해 권력의지를 내보이는 ‘유사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앞뒤 가리지 않고 전쟁으로 뛰어들어야 했는가? 그건 아니다. 소잉카는 “공포를 퍼뜨리는 것은 유사국가이지만, 국가 역시 이들을 낙인 찍음으로써 얻는 이익을 즐긴다”고 지적한다. 더 깊은 뿌리에는 ‘종교’가 자리잡고 있다. 맹종을 강요하는 종교의 ‘광기’가 테러라는 가장 심각한 형태로 나타나고, 9.11은 “세계 정치와 종교를 둘러싼 갈등의 파국적 확인”이었던 셈이다.
‘공포의 확산’을 막기 위한 소잉카의 처방전은 ‘인간의 존엄성’이다. 이스라엘 병사의 총구 앞에서 조상 대대로 내려온 올리브 나무가 잘려나갈 때,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는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이스라엘 두 병사의 죽음만을 애도하는 성명서를 발표할 때, 팔레스타인은 ‘굴욕’을 느낀다. 이렇게 자존심이 훼손될 때, 공포는 전지구적으로 확산된다. 따라서 ‘공포의 파급력’을 막을 근본 해결책은 ‘공포 확산’의 출발점인 중동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야 할 유엔 등 국제기구의 역할도 중요하다.
2004년 비비시 라디오4의 강의를 묶어낸 탓에 ‘뒤늦은 이야기'라는 느낌도 들지만,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공포’를 분석하는 소잉카의 관점은 눈여겨볼만하다. 1989년 니제르의 여객기 폭발사건과 9.11테러를 비교하며, “둘 다 일반시민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이었지만, 세계는 ‘제3세계의 사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식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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