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네틱스’를 쓴 수학자 노버트 위너. 위키미디어 코먼스
동물과 기계의 제어와 커뮤니케이션
노버트 위너 지음, 김재영 옮김 l 읻다 l 2만3000원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라는 말을 처음 세상에 내놓은 수학자 노버트 위너(1894~1964)의 고전적 저작 ‘사이버네틱스’가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이 책은 1948년 초판이 출간된 뒤 지식계와 산업계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사이버네틱스는 20세기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학문적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가 됐다. 이 책의 자궁 노릇을 한 것은 1946년 3월 뉴욕에서 열린 메이시 회의였다. 1953년까지 정기적으로 계속된 이 회의에는 신경생리학자·수학자·공학자·사회학자·인류학자·심리학자가 두루 참여했는데, 위너는 이 회의의 주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메이시 회의의 목표는 기계와 생물과 사회 영역에서 나타나는 ‘피드백(되먹임) 메커니즘’을 밝히는 것이었다. 여기서 얻은 아이디어와 사례를 바탕으로 삼아 쓴 책이 ‘사이버네틱스’다. 이 책의 서문에서 위너는 메이시 회의 연구 영역을 아우르는 개념을 ‘사이버네틱스’라는 신조어로 부르게 된 경위를 설명한다. “우리는 기계와 동물 모두를 대상으로 포괄하는 제어와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전체 분야를 ‘사이버네틱스’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 이 이름은 조타수라는 뜻의 그리스어 ‘키베르네테스’(kybernetes)로 만든 것이다.” 사이버네틱스의 가장 원형적인 모습을 배를 모는 조타수(키베르네테스)가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용어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항해의 목표점을 향해 나아가는 조타수는 방향이 잘못됐을 경우 키를 조정함으로써 방향을 바로잡는다. 앞선 행동의 결과를 다음 행동에 반영하는 ‘피드백’을 반복해 항해의 목표를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목적 있는 행동을 할 때 피드백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의 행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먼 거리를 날아가기 위해 기상정보를 받아들여 진로를 바꾸는 철새, 인간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호르몬을 분비하는 장기, 생물 개체가 모여 자체 항상성을 유지하는 사회도 피드백 메커니즘을 이용한다. 더 나아가 자동 조절 장치에서도 피드백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사이버네틱스는 인간·동물·사회·기계 같은 여러 ‘목적론적 계(시스템)’에서 볼 수 있는 제어와 커뮤니케이션의 메커니즘을 해명하고, 한 영역에서 해명된 메커니즘을 다른 영역에 적용하는 기획이다. 피드백을 통해 자기 조절에 이르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학문이 사이버네틱스인 셈이다. 이 사이버네틱스는 특히 자기 제어 시스템 기술을 연구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여기서 인공지능·제어공학·통신공학·인간공학이 뻗어 나왔다. 또 여기서 ‘사이버네틱 오거니즘’(cybernetic orgnism)이라는 말을 축약한 사이보그라는 말이 태어났으며 ‘사이버’를 접두사로 삼은 무수한 기술 영역이 탄생했다. 위너의 사이버네틱스는 사회학·경제학·심리학·교육학·철학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위너가 사이버네틱스의 산업화 가능성을 일찍이 알아보았고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위험을 미리 경고했다는 사실이다. “진보는 시대의 소유다. 우리가 진보를 억제한다고 해도 이 기술의 발전을 가장 무책임하고 욕심 많은 기술자들의 손에 넘기는 결과만 생길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연구의 동향과 의의를 널리 알리고 이 영역에서 우리의 노력을 생리학이나 심리학과 같이, 전쟁과 착취에서 멀리 떨어진 분야에 한정하는 일이다.” 위너는 그 뒤에 쓴 ‘인간의 인간적 사용’이라는 책에서 사이버네틱스 공학이 가져올 사회적 위험성을 상세히 알리기도 했다. 위너의 사이버네틱스는 막대한 기술 진보를 낳은 학문적 창조물인 동시에 인간이 기술에 종속되는 위험 사회를 불러낸 마법사의 주문이었음을 이후 역사는 보여주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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