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본상을 받은 일본 작가 메도루마 슌(63). 사진 왼쪽은 통역을 맡은 곽형덕 명지대 일문과 교수. 사진 서울 은평구
일본에서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40년 넘게 벌여온 소설가에게 천황제 비판 등 역사문제에 매달리는 이유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피해자라기보다 무엇보다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 오키나와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구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이는 일이다.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 활동은 피곤한 일이다. 그러나 (저항을) 지속하지 않으면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제7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본상(서울 은평구 주최)을 받은 일본 작가 메도루마 슌(63)은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과 오키나와’, ‘일본 내 피해자의 가해자성’을 시종 강조했다. 간토대지진 100년이 되어도 일본 정부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도 여전하다. 여기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추가되었고, 동북아 정세는 더 위태로워졌다. ‘어군기’로 등단 40주년을 맞은 2023년, 한일관계보다 그로 인한 한국 내 갈등이 더 심화되어 보이는 서울에서 메도루마 슌이 가장 힘준 말은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저항’이다.
1960년 오키나와에서 태어난 메도루마는 류큐대학 입학 2주째부터 반전 데모에 나섰고, 5·18 광주학살 규탄 집회에서도 참여했다. “작가는 문학자이기 전 사회 구성원이고 책임져야 하는 존재다. 쓰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분리될 수 없다.” 그가 오키나와의 굴곡진 현대사를 문학으로 알리는 데 주력한 이유다. 오키나와 전쟁 상흔의 오늘날을 그린 장편 ‘물방울’(1997, 국내 2012년)과 ‘혼 불어넣기’(1998, 국내 2008년)는 각각 아쿠타가와상과 가와바타 야스나리상을 받았다. 그는 천황의 전쟁 책임을 조롱투(‘1월7일’)로 묻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10대였던 어머니가 살던 오키나와에서의 미군 집단 강간 사건을 다룬 ‘기억의 숲’은 2018년 국내에 소개되며 오키나와 방언이 제주말로 옮겨지기도 했다. 오키나와 문제의 호환성과 보편성을 극대화한 셈이다. “관동대지진 당시 오키나와 사람도 ‘공통어’를 능숙하게 말하지 못해서 조선인으로 의심받아 죽임을 당할 뻔했다. 그때 학교에서 배운 교육칙어와 역대 천황의 이름을 말함으로써 목숨을 건진 사람이 있다.” 그의 할머니가 남긴 이야기다.
하지만 메도루마는 피해자 오키나와조차도 가해자성과 중첩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관동대지진 피해자인 오키나와인뿐 아니라, 자경단으로 활동한 오키나와인들은 없었나 묻는다. 차별이 두려워 차별하는 쪽에 선 사람들, 그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오키나와 사람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여타의 사회비판적인 일본 작가들에 견줘서도 메도루마가 특히 도드라지는 차별점이다. “오키나와에서 발진한 미군 폭격기가 한국전 당시 한반도를 공습했다”는 사실 또한 메도루마는 현재 동북아 정세를 위협하는 일본의 태도와 연결한다.
메도루마는 “천황의 전쟁 책임을 묻는 건 식민지배 책임, 나아가 동아시아에 가한 책임을 묻는 것이기에 계속 추궁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와도 맞닿는다. 그는 “방류는 결국 원전 재가동을 위한 것”이라며 “(일본) 정부의 그런 자세엔 상당히 이상한 점들이 많아 결국 일반 시민들이 규탄하고 막는 길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제7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특별상을 받은 시인 진은영(53). 진은영은 수상 소감으로 “문학이 고통의 언어를 번역하는 역할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서울 은평구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선정위는 이날 “메도루마의 현실 탐구의 집요함, 그 어떤 감상주의적 봉합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현실에 내재하는 적대의 선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야 마는 비타협적 리얼리즘의 정신”을 본상 선정사유로 소개했다. 시상식과 ‘본상 수상작가와의 만남’은 12일 은평구 진관사한문화체험관에서 열린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 특별상은 진은영 시인에게 돌아갔다.
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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