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이중섭, 그 사람’ 펴낸 일 마이니치 신문 오누키 기자
“이중섭(1916~56)이 얼마나 한국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지 요즈음 실감하고 있어요. 지난달 한국어 책이 나오고 2주 만에 2쇄를 찍었거든요. 2년 전 일본어로 나온 책은 초판을 6천 부 찍기도 했지만 아직 2쇄는 못 냈어요.”
최근 한국어로 출간된 ‘이중섭, 그 사람-그리움 너머 역사가 된 이름’(최재혁 옮김, 혜화1117)의 저자 오누키 도모코는 일본 일간 ‘마이니치 신문’의 24년 차 기자다. 야구 전문기자를 꿈꾸며 신문사에 입사한 뒤 기자 초년병 시절 기자로서 야구장을 누비는 꿈을 이루고 그 뒤엔 주로 정치부에서 외교 관련 기사를 썼다. 2013년부터 5년 동안 서울 특파원을 지냈고 논설위원을 거쳐 지금은 정치부에서 칼럼과 인터뷰 기사를 쓰고 있다.
그는 서울 특파원 시절인 2016년에 ‘한국인이 사랑하는 화가’ 이중섭 이름을 처음 들었다. 그해 ‘이중섭, 백년의 신화’ 전시에서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 1921~2022)에게 “나는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라고 쓴 일본어 편지를 보고 이 부부의 사랑에 강렬한 호기심이 들었단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을 쏟아 일본어 원저 ‘사랑을 그린 사람’을 펴냈다.
지난 8일 서울 김포공항역 근처 한 카페에서 북 콘서트를 위해 방한한 저자를 만났다.
그는 이번 책을 위해 아흔이 넘은 야마모토를 일본 자택에서 2016년과 2017년, 2019년 세 차례 인터뷰했고 화가의 차남 태성과 손녀 야마모토 아야코(장남 고 태현씨 딸)도 만나 ‘이중섭과 야마모토의 사랑’을 깊이 들여다봤다. 2018년과 2020년에는 태성씨한테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와 한국에 살던 야마모토가 친정에 보낸 편지 등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편지 수십통을 받아 집필에 활용하기도 했다. 이 중에는 김환기 화가의 부인인 김향안 선생 등 이중섭 지인들이 가족과 떨어져 홀로 있는 화가를 걱정하며 일본의 부인에게 보낸 편지도 여럿이다.
1939년 일본 도쿄에서 만난 이중섭과 야마모토는 6년 연애 뒤 1945년 원산에서 결혼했다. 야마모토가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때는 정말로 행복 그 자체였어요”라고 했을 만큼 원산 시절은 이중섭 부부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단다. 하지만 이 시간은 짧았다. 5년 뒤 터진 전쟁으로 피난지 부산과 제주에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야마모토는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1952년 일본을 향했다. 당시 미수교국 일본 비자를 내기 힘들었던 이중섭은 1953년 단 한 차례 일본을 찾았을 뿐 1956년 서울의 한 병원에서 무연고자로 사망할 때까지 아내와 두 아들을 만나지 못했다.
35살에 남편과 사별한 야마모토는 재혼하지 않고 평생 가슴속에 이중섭을 품고 살았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없었고 초등학교 때는 너무 못해 미술이 고통스러운 과목이었다는 기자 오누키가 이번 책을 쓰면서 가장 답을 찾고 싶었던 궁금증이다. “남편 사별 뒤 40, 50대를 거치고 아이를 키우면서 여러 갈등이나 고민이 있었을 겁니다. 외롭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텐데요. (야마모토가) 어떻게 견뎠는지 알고 싶었어요.”
서울 특파원 시절 이중섭 전시 보고
일본에 ‘부부의 사랑’ 알리자 맘먹어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 세차례 인터뷰
이중섭과 지인 미공개 편지도 입수
“사별 뒤 어떻게 견뎠는지 답 못 찾아
더 일찍 인터뷰 못한 게 많이 아쉬워” 야구 전문기자 꿈꿨던 24년 차 기자 답을 찾았을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40대와 50대에 그분(야마모토)이 가진 감정의 사실관계를 정확히 따지지는 못했어요. 때론 과거의 기억이 시간이 지나면 좋은 추억이 되기도 하잖아요. 그분이 조금 더 젊었을 때 인터뷰하지 못한 게 많이 아쉬워요. 그래야 인간 야마모토의 진면목을 보여줬을 텐데요.” 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 “제 책의 여성 독자 중 많은 분이 (야마모토가) 젊었을 때 이중섭과의 좋은 추억만 가지고 있어서 그랬을 거라고 하더군요. 부부로 같이 산 기간이 짧아서요. 화가의 아내로 사는 게 굉장히 힘들다는 거죠. 특히 한국분들이 이런 말을 많이 했어요. (이중섭이) 경제적으로 무능했고 다혈질이라 좋은 남편감은 아니었다면서요.” 하지만 세상을 뜨기 전 야마모토가 이중섭과의 기억을 행복해했다는 점은 분명하단다. “그분(야마모토)은 95살에도 이중섭 이야기를 하면 표정이 부드럽고 행복해 보였어요. (일본과 한국의) 역사나 어려운 질문을 하면 조심스럽고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중섭과의 첫 만남이나 신혼생활은 자세히 이야기하셨죠. 그 나이에도 여전히 가슴속에 이중섭이 있었어요. 그분에게 남자는 이중섭 하나였음이 분명해요.”
그의 책은 이중섭의 삶과 예술을 일본에 본격적으로 알린 첫 저술이다. 책이 나오고 “이중섭 전시회를 하면 좋겠다”는 등의 일본 독자 반응이 꽤 있었다고 오누키 기자는 전했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 저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부모님도 (이중섭 부부와) 같은 시기에 한국인 남편과 일본인 아내로 만나 한국에서 신혼생활을 했다고 하시더군요. 전쟁 때 생활고로 부인이 아이를 데리고 일본으로 온 것도 같다고요.”
그는 한국의 노무현 정부 때 일본 외무성을 출입하며 한일 관계를 깊이 취재한 것을 계기로 신문사에서 서울 특파원 권유를 받고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단다. 특파원 부임 때는 4살 아들을 동반해 서울에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보냈다. “일본 신문사 여성 특파원 중 남편은 일본에 머물고 어린 아이만 데리고 와 양육하기는 제가 처음일 겁니다. 이런 워킹맘의 처지도 제가 야마모토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데 영향이 있었겠죠.”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중섭 예술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분(이중섭)의 인생을 작품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게 어쩌면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요. 엽서화에는 야마모토와 연애가 한창이던 20대 모습이, 은지화에는 성적인 표현까지 부부의 사랑이 깊어가는 모습이 보이죠. 개인전을 앞두고 열정적으로 작품을 계획할 때는 황소 그림이 나타나고요. 또 기력이 없을 때는 그림에서 피가 보이고 흰 색채가 두드러지죠.”
가장 마음이 가는 이중섭 작품을 묻자 그는 화가가 1954년 일본의 부인에게 보낸 편지화 ‘현해탄1’을 꼽았다. “슬프긴 하지만 제 마음에 가장 와 닿은 작품입니다. 이중섭이 미소 짓는 부인과 두 아들에게 ‘꼭 도쿄에 갈 테니 기다려 달라’고 외치는 것 같아요. 아직은 희망을 잃지 않은 모습이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오누키 도모코 기자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이중섭과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 혜화1117 출판사 제공
‘이중섭, 그 사람’ 표지. 혜화1117 출판사 제공
일본에 ‘부부의 사랑’ 알리자 맘먹어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 세차례 인터뷰
이중섭과 지인 미공개 편지도 입수
“사별 뒤 어떻게 견뎠는지 답 못 찾아
더 일찍 인터뷰 못한 게 많이 아쉬워” 야구 전문기자 꿈꿨던 24년 차 기자 답을 찾았을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40대와 50대에 그분(야마모토)이 가진 감정의 사실관계를 정확히 따지지는 못했어요. 때론 과거의 기억이 시간이 지나면 좋은 추억이 되기도 하잖아요. 그분이 조금 더 젊었을 때 인터뷰하지 못한 게 많이 아쉬워요. 그래야 인간 야마모토의 진면목을 보여줬을 텐데요.” 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 “제 책의 여성 독자 중 많은 분이 (야마모토가) 젊었을 때 이중섭과의 좋은 추억만 가지고 있어서 그랬을 거라고 하더군요. 부부로 같이 산 기간이 짧아서요. 화가의 아내로 사는 게 굉장히 힘들다는 거죠. 특히 한국분들이 이런 말을 많이 했어요. (이중섭이) 경제적으로 무능했고 다혈질이라 좋은 남편감은 아니었다면서요.” 하지만 세상을 뜨기 전 야마모토가 이중섭과의 기억을 행복해했다는 점은 분명하단다. “그분(야마모토)은 95살에도 이중섭 이야기를 하면 표정이 부드럽고 행복해 보였어요. (일본과 한국의) 역사나 어려운 질문을 하면 조심스럽고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중섭과의 첫 만남이나 신혼생활은 자세히 이야기하셨죠. 그 나이에도 여전히 가슴속에 이중섭이 있었어요. 그분에게 남자는 이중섭 하나였음이 분명해요.”
오누키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이중섭 그림으로 꼽은 ‘현해탄 1’. 혜화1117 출판사 제공
오누키 기자와 인터뷰할 때 야마모토 마사코 모습. 혜화1117 출판사 제공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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