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배달 플랫폼 노동자가 지난달 2일 오후 경기 수원시에서 음식을 배달한 뒤 다음 주문을 확인하고 있다. 이날 이곳의 기온은 34도를 넘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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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경·서유미·염기원·이서수·임성순·장강명·정진영·주원규·지영·최영·황여정 지음 l 문학동네 l 1만7000원
정보통신(IT)업체 재무팀장 차진혜는 낀 세대, 낀 처지다. 사장의 신임을 받는 관리자이면서 그 자신 아파트 대신 ‘썩빌’(썩은 빌라)을 사고선 낙담해온 마흔살 도시 노동자다. 런치플레이션(점심값 상승)으로 주변 식당 만원짜리 메뉴는 언덕길 너머 동해식당 대구탕 정도라 정오마다 직원들 지청구를 피하기 어렵다. 하필 같은 팀 90년대생 사원 박이재를 짝사랑하는데 낮은 식대 때문에 퇴사까지 고민한단다.
그는 대표를 설득해 식대 인상할 묘안을 마련한다. 대표는 일 잘하는 차진혜에게 무능한 인사팀 홍 차장을 정리할 의사를 내비친다. 엑셀은 못해도 넉살은 좋은 홍 차장이 마침 와 묻는다. “제가 비혼식을 올리긴 좀 면구스럽고, 비혼을 맹세하는 글을 썼는데 이걸로 (비혼)축의금을 받을 수가 있나 해서요.” 차진혜는 ‘지금… 퇴직금 챙기시게 생겼어요’란 말을 삼켜야 하고, “구애 갑질”이 될까 박이재에 품은 마음도 삼키느라 애가 탄다. 엠제트(MZ)세대로도 묶이길 마다하는 정결한 제트(Z)세대 박이재는 퇴근길 회사에서 간식을 훔치다 차진혜와 마주친다.
이서수의 단편 ‘광합성 런치’다. 웃다 멍들겠다. 망각하고 있던, 임금은 노동이 아닌 존엄한 자본주의 아래 비루함의 대가라는 걸 새삼 일깨우고 감각시킨다.
‘광합성 런치’를 포함해 여기 도열한 소설들은 힘이 세다. 당대의 디테일들을 샅바 쥐듯 한다.
2년제 대학을 졸업한 ‘나’가 여행사에 취업하자 가족은 환호했다. “좋은 회사”였다기보다 “회사를 좋아했”다. 박봉에도 회사가 결속하고 성장한 배경이다. 코로나19가 닥친다. 무급휴직에 권고사직이 이어진다. 출근한 자와 휴직한 자끼리(만) 시기하고, 남은 자와 떠난 자끼리(만) 음해한다. “흐리멍덩” “잘 놀고 외향적인” 20대 화자가 겪는 ‘사회적 재난’이 개인 단위, 지근 관계 단위로 세밀화처럼 그려진다. 장강명의 ‘간장에 독’이다.
코인 투기로 빚쟁이가 된 자의 운명과 같은 시시포스적 노동은 주원규의 ‘카스트 에이지’, 노동을 무력화하는 부동산 계급의 생리는 정진영의 ‘숨바꼭질’로 드러난다. 이것은 르포가 아니다.
“지금, 여기” “한국사회의 ‘먹고사는 문제’”를 “발품을 팔아” 판타지가 아닌 “사실적으로” 쓰겠다 규합한 동인 ‘월급사실주의’의 첫 앤솔러지다. 장강명은 서언에서 “한국 소설가들이 탄광의 카나리아고 잠수함의 토끼 같은 존재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물으며, 중산층·노동의 몰락 등 전대미문의 현상 앞에서 “원인도 모르고 대책도 모르”지만 “그것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알고, 그 고통에 대해서는 쓸 수 있다”고 썼다. “후대 작가들은 알 수 없는 것, 동시대 작가의 눈에만 보이는 것도 있”으므로 바투 펜을, 샅바처럼, 쥐겠단 얘기다.
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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