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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새로운 여성 시대 함께한 ‘자기만의 방’

등록 2023-09-22 05:01수정 2023-09-24 10:34

호텔 바비즌
여성의 독립과 야망, 연대와 해방의 불꽃이 되다
폴리나 브렌 지음, 홍한별 옮김 l 니케북스 l 2만4000원

1928년 2월, 미국 뉴욕 맨해튼에 23층짜리 여성 전용 레지던트 호텔이 문을 열었다. 호텔 바비즌. 19세기 프랑스 예술 사조인 바르비종(Barbizon)파에서 이름을 따왔다.

제1차 세계대전 뒤 재건의 붐이 일던 1920년대, 미국 전역에서 젊고 야망에 찬 여성들이 꿈을 좇아 뉴욕으로 몰려들었다. 1920년 미국 의회가 여성 투표권을 인정한 직후였다. 바야흐로 ‘신여성’의 시대였다. 바비즌 호텔은 처음부터 ‘여성’과 ‘독립’을 결합한 마케팅 전략을 내세웠다. 바비즌은 예술가, 작가, 배우, 음악가, 패션모델, 비서, 사업가 같은 전문직을 꿈꾸는 고학력 여성들의 생활과 사교 공간이자 ‘커리어 우먼’의 욕망을 실현하는 해방의 베이스캠프였다.

‘호텔 바비즌’은 이 호텔이 처음 지어질 때부터 2007년 부호들이 사는 고풍스런 콘도미니엄으로 재개장하기까지 80년을 재구성한 사회사이자 문화사이다. 바비즌은 스쿼시 코트와 수영장, 예술 스튜디오, 최신 베스트셀러가 있는 도서실을 갖췄다. 매달 열리는 연극, 콘서트, 강연도 홍보했다. 개장 이듬해인 1929년 대공황이 닥치자, 소박한 객실의 경제성과 사회적 네트워킹의 기회를 강조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1960년대 전성기까지 이곳을 거쳐 간 여성이 35만명이 넘었다. 그중엔 작가 실비아 플라스, 뒷날 모나코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 여성 잡지 ‘마드무아젤’의 뛰어난 객원 편집자들도 있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여성 전용 레지던트 호텔로 문을 연 바비즌 호텔의 정문. 니케북스 제공
미국 뉴욕 맨해튼에 여성 전용 레지던트 호텔로 문을 연 바비즌 호텔의 정문. 니케북스 제공

뒷날 모나코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가 호텔 바비즌에 머물던 시절 잡지를 읽는 모습. 니케북스 제공
뒷날 모나코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가 호텔 바비즌에 머물던 시절 잡지를 읽는 모습. 니케북스 제공

1943년 미국 배우 리타 헤이워스(왼쪽 두번째)가 영화 ‘커버 걸’에서 맡은 배역을 연습하던 중 현역 댄서들과 포즈를 취했다. 니케북스 제공
1943년 미국 배우 리타 헤이워스(왼쪽 두번째)가 영화 ‘커버 걸’에서 맡은 배역을 연습하던 중 현역 댄서들과 포즈를 취했다. 니케북스 제공

“바비즌은 여자들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 자기만의 방을 갖고 자기 삶을 계획하고 설계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아무도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던 때, 바비즌은 그 씨앗을 싹 틔운 배양실이었다. 그렇다고 이들 모두가 성공적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직 젊고 예쁘고 매력적이며 열의가 넘치는 동안에만 한정된 기회의 창이 열린다는” 한계가 뚜렷했다. ‘결혼’이 그 종착지이자 목표였다. 남자 없는 ‘인형의 집’에서 여성의 독립과 안전은 여성이 세상으로부터 고립·차단되는 것과 경계가 모호했다. 얄궂게도 여성운동의 성장이 바비즌의 쇠퇴를 가져왔다. 여성을 격리해야 할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여러 논란과 수차례 매각 끝에 호텔은 1981년 여성 전용을 포기했다. 그러나 반세기 전으로 되돌아간 책 속에선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와 타이프라이터 두드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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