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 작가의 장편소설 ‘세 여자’ 일어판(양징자 번역·아주마북스 펴냄) 출판기념회가 지난달 9일 오후 도쿄 분쿄시빅홀에서 열렸다.
조선희 지음 l 한겨레출판 l 1만6800원 갓 구워낸 소설 같다. 근래 날고뛰는 권세가들이 이처럼 도마 위에 오른 작품은 없다. 소설 구성의 요소별로 보자. 이 소설의 사건은 ‘윤석열’이다. 배경도 ‘윤석열’이다. 인물은? 윤석열 후보를 대통령으로 찍은 20대 아들 동민, 대선 전 동민과 논쟁하다 휴대폰을 던진 영한과 정희 부부, 당당히 제3의 길을 걷는 딸 하민이다. 2022년 봄 대선을 맞아 동민의 “씨발” 항명과 가출에, 나름 단란을 자부하던 ‘386-엠지(MZ)’ 네 식구도 예외 없이 깨질 판이다. 달포가 훨씬 지나서야 “실망과 체념에도 적응해 가”며 가족끼리라도 화해를 모색한다. 정의당 심상정을 지지했던 하민은 자리를 주선한 대신, 커밍아웃에 튀르키예 여성과의 결혼계획을 투척한다. “4인 가족이 이렇게 제각각인데, 대통령은 어떻게 하나. 나라를 가지런히 운영하는 건 당최 불가능한 거지.” 소설은 지난해 봄 정희의 입장으로 시작해 올봄 정희의 입장으로 마무리한다. 그사이 새로운 유형의 가족과 터전을 꿈꾸는 하민의 고민과 좌절, 도전, ‘이대남’으로 치부되는 동민의 꿈과 취업, 사랑, 사회변화에 가장 부적응하는 60대 이상 남자 집단에 속하는, 그러나 급변하는 시대상을 ‘혐오의 팬데믹’이란 열쇳말로 성찰해보려는 전직 사회학 교수 영한의 이야기가 2022년 여름·가을·겨울을 지나며 형상화한다. 이들 계절 모두 한국 정치를 기후 삼는다. 과연 대한민국 대통령제는 봉도 골도 이처럼 높고 깊어, 변변찮을 땐 ‘기후위기’라고밖에 부르지 않을 도리가 없겠다. 1950년대 후반생으로 대학생 때 공안사건에 엮여 고문까지 당했던 영한이나 진보신문에서 투지 넘치는 기자로 일했던 정희는 생애주기와도 맞물려 당대 가장 고농축된 우울증과 불안을 감당한다. 하지만 그건 그들 세대의 경우 성취하고 영위해본 한때가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리라. 아울러 그것이 새봄 의지적으로 다시 희망하고 낙관해보려는 정희의 에너지가 된다. 일제강점기 여성 혁명가의 삶을 되살린 장편 ‘세 여자’를 마지막 소설로 생각했다가 5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조선희 작가에게 ‘누구 편이냐’를 물을 필요는 없겠다. 때마침 최근 신간에서 저명한 비평가 비비언 고닉(88)은 ‘퍼스널 저널리즘’을 강조한다. “(나의) 페르소나의 모습이 바깥으로, 다시 말해 정치와 문화로, 뻗어 나가면 하나의 의제에 복무하게 되고, 안으로 향하면 첫째 개인 저널리즘이, 둘째 개인 서사가 된다는 사실….” 쉽게 말하자면, ‘개인적 관점’으로 사회 문제를 들춰 공감시키는 글쓰기다. 이때 감정은 곧 관점이다. “현실 정치는 요사이 우리 문학, 특히 소설에서 금기”(‘작가의 말’)인 지금, ‘정희’가 쏟아낸 분노와 상실은 날것처럼 고스란하다. 입담이 막힘없다. 누군가에겐 쫀득할 테고 누군가에겐 질겅일 것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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