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에프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 위키미디어 코먼스
희망으로 연결된 SF 세계, 우리의 공존에 대하여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콘수엘라 프랜시스 엮음, 이수현 옮김 l 마음산책 l 2만6000원 “SF 소설을 쓰는 여성 작가로 살아가면서 버틀러의 영향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김초엽 작가) 에스에프(SF) 작가들의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1947~2006)의 작품 세계로 한발짝 더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30년 가까운 그의 작가 생활을 망라한 인터뷰집이 발간됐다. 과학 기술에 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가장 첨예한 현실적 모순을 담아낸 작가로 평가받는 버틀러는 에스에프 작가에게 수여되는 주요 문학상을 모두 석권한 전무후무한 아프리카계 여성 작가다. 194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구두닦이 아버지와 가사 노동자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버틀러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종’과 ‘성별’로 출발한다. 그는 초기작 ‘킨’(Kindred, 1979)에서 현대를 살던 흑인 여성이 100여년 전 미국의 동남부에 떨어지는 타임슬립을 통해 차별과 학대의 공포를 간접 체험케 한다. 이런 설정은 사실상 최초의 ‘흑인 여성 에스에프 작가’였던 그의 삶의 궤적과도 겹쳐보인다. 그는 1980년 인터뷰에서 “흑인들이 초록색(화성인)이거나 하얗기만(백인) 한 우주에 대해 읽고 싶지 않겠죠. 저는 SF를 이 세상에 백인 남성이라는 한 종류의 사람들만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전파하는 방법으로 봐요”라고 작품의 동기를 설명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이내 차별과 고통 전반에 대한 공감으로 확장된다. 그는 후기작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Parable of the Talents, 1998)에서 21세기 초반 기후변화로 인한 대재난 속에 갈 곳 없는 이들을 돌보며 공감하는 종교 ‘지구종’을 창안해, 약자와 소수자를 감싸 안는 희망을 그린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지지를 획득하는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과 그들의 잘못된 결정으로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2023년의 섬뜩한 현실을 미리 내다보기라도 한 듯한 통찰이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이런 작품들을 창작하는 과정의 고민들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거나, 아니면 안다고 상상할 만큼은 안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자신을 ‘뉴스 중독자’라고 평가하는데, 이야기를 지어내는 이로서 ‘개연성의 세계’에 대한 집착을 엿볼 수 있다. 후배 작가를 위한 조언에서는 누구보다 성실한 직업인의 품성도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당연하게도 읽으라는 거예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작가가 되고 싶다면서 책 읽기는 싫어하는지. 두 번째는 쓰라는 거예요. 마음에 들거나 말거나, 매일 쓰세요. 세 번째는 재능이 있든 없든 잊어요. 사실 재능은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작품 안팎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작품만큼이나 매력적인 작가의 삶을 느낄 수 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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