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중세를 수놓은 16가지 ‘사람들’ 이야기
1527년 ‘코냐크 동맹 전쟁’ 중에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가 양성한 군대에 의해 약탈당하는 ‘성도’ 로마의 모습을 그린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 댄 존스는 ‘중세인들’에서 “중세가 1527년 로마 거리에서 분명하게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것은 매우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썼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서로마 몰락부터 종교개혁까지, 중세 천년사를 이끈 16개 세력
댄 존스 지음, 이재황 옮김 l 책과함께 l 세트가 4만8000원 기후변화, 대량 이주, 유행병, 기술 변화, 세계적 연결망…. 우리가 오늘날 살고 있는 혼돈의 시대를 표현하고 있는 듯하지만, 이 말들은 서양 중세 천년을 설명하는 말들이기도 하다. 영국의 역사 저술가 댄 존스의 ‘중세인들’은 중세를 움직였던 다양한 ‘힘’들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냄으로써 과거나 지금이나 그 힘들을 만들어내고 또 그 힘들에 규정 받는 인간의 모습을 펼쳐 보인다. 서양 중세를 다룬 책들은 차고 넘치지만 이 책은 무엇보다 독특한 구성으로 독자의 흥미를 잡아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16개의 장으로 중세 역사를 서술해나가는 한편, 매 시기를 주도한 가장 눈에 띄는 인간 집단, 곧 어떤 ‘사람들’을 각 장의 주인공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중세의 출발점인 서로마 제국의 멸망은 중세의 기틀을 만든 ‘로마인’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훈족과 서고트족 등 로마 제국을 뒤흔든 ‘이방인들’과 동방과 서방 사이의 완충 지대가 될 동로마 제국을 만든 ‘동로마인들’, 전성기 로마를 능가하는 이슬람 제국을 세워 황금시대를 구가한 ‘아라비아인들’의 이야기로 흐른다. 4세기 동아시아 중부의 지독한 가뭄이란 기후변화를 피해 서쪽으로 대량 이주한 훈족과 고트족은, 이를테면 ‘기후난민’이었던 셈. ‘사람들’의 범주는 민족에만 머물지 않는다. ‘프랑크인들’은 유럽의 서쪽과 북쪽을 장악하며 오늘날 서유럽 지역의 기반을 다졌는데, 이곳을 지배한 것은 “제국이나 왕조가 아니라 종교 및 군사 전문지식을 중심으로 한 초국가적 운동”이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엄청난 ‘연성’ 권력을 행사했던 ‘수행자들’과 ‘기사들’의 혼합은 ‘십자군들’로 정점을 이루게 된다. 서방을 중심으로 삼았지만 지은이는 되도록 “중세의 서방이 세계의 동방 및 남방과 얼마나 깊숙이 엮여 있는지” 보여주려 했다고 말한다. 12~13세기 정복전쟁으로 세계의 절반을 지배했던 ‘몽골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런 노력을 잘 보여준다. 몽골인들은 거대한 제국으로 세계의 무역과 여행망을 바꿔놓았고, 이는 상업혁명과 대학 설립, 도시 건설 등 “서방의 세계와 서방의 정신을 개조”했던 ‘상인들’, ‘학자들’, ‘건설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4세기 몽골에서 시작해 전세계적인 대유행병이 된 흑사병은 참혹하게 내몰린 ‘생존자들’에게 이전과 다른 시대를 살도록 압력을 가했고, 문예부흥 등을 이끈 ‘쇄신자들’은 새로운 사상과 기술, 발견으로 이를 이룩했다. 먼 바다로 나간 ‘항해자들’은 이전과 다른 ‘제국’의 시대를 열었다. 최종적으로 중세 천년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새로운 통신 기술(인쇄)에 힘입어 종교개혁을 일으킨, ‘개신교도들’이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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