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현종 10년인 1019년 2월에 침략한 10만여 명의 거란군을 강감찬 장군이 귀주에서 크게 무찌른 전투인 귀주대첩을 그린 기록화. 전쟁기념관 오픈아카이브
한국인의 탄생
한국사를 넘어선 한국인의 역사
홍대선 지음 l 메디치미디어 l 1만8000원
얼마 전, 한 일본 언론이 “한국은 끝났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급속한 인구 감소, 그에 따른 경제 침체가 주요 원인이다. 생각해 보면 “한국은 끝났다”, “한국인은 틀렸다”는 말은 세간에, 또 역사 이래 늘 있었던 흔한 수사였다. 하지만 한국은 지난 반만년(?)의 역사에서 적잖이 틀린 적은 있으나 끝난 적은 없었다. 홍대선 작가의 ‘한국인의 탄생’은 적잖이 틀리면서도 끝내 끝나지 않았던 한국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유쾌한 고찰을 담은 책이다. 지은이는 한국인이라는 원형(原形)을 만든 이로 세 사람을 지목한다. 단군, 고려 현종, 정도전이다.
저자에 따르면, 단군은 건국신화의 주인공이지만 몇몇 실책을 범했다. 일단 너무 척박한 땅을 한국인의 보금자리로 선택했다. 사계절이 뚜렷해 강산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여름엔 정말 덥고 겨울엔 정말 춥다.” 게다가 70퍼센트가 산악지형이다. “단위면적당 인구부양력이 가장 높은 작물”인 쌀에 지금까지도 목숨을 거는 이유다. 지나치게 힘이 센 나라, 즉 중국 옆에 자리한 것도 실책이다. 역사 이래 숱한 간섭과 침략을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니, 단군은 해도 너무 했다. 그럼에도 여타 민족이나 국가들처럼 중국에 흡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중국은 수시로 침범해 한반도 병탄(倂呑)을 노렸지만 “결과적으로 얻은 게 없었다.” 하여 “한반도가 고개를 숙여 주기만 하면 건드리지 않기로 결론”을 굳히고, 그렇게 행동했다.
저자에 따르면 고려 8대 군주 현종은 한민족 탄생의 일등공신이다. 즉위 당시 그는 “허수아비 군주”였지만, 강감찬의 귀주대첩으로 유명한 거란과의 전쟁이 끝난 후에는 “하늘이 내린 성군”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대 최강국인 거란과의 싸움은 무려 26년이나 이어졌는데, 이 싸움에는 고려에 흡수되었으나 겉돌던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발해계 사람들이 “한 무리를 이루어 그들 서로보다 훨씬 이질적인 적에” 맞섰다. 귀주에 모여든 20만 명은 함께 고통받았으나 결국 승리한 기억을 안고 고향에 돌아가 온갖 이야기로 풀어냈을 것이다. 실존하는 허구였던 한민족은 그렇게 탄생했다.
현종이 한민족의 탄생을 이끌었다면, 정체성을 부여한 것은 정도전이다. 그는 유교를 기반으로 “임금의, 사대부에 의한, 백성을 위한” 통치 체제를 구축했는데, 거기서부터 지금까지도 유효한 한국인의 윤리관, 국가관이 정립되었다. 한편 명예를 추구하면서 실리에 집착하는 한국인의 유별난 욕망도 배태되었다. 다만 들끓는 욕망 속에서도 효(孝)라는 “조선의 질서 토대”를 굳건히 함으로써 “조선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가정”은 500년을 무사했다. 정도전이 조선의 체제를 설계하며 민족적 정체성까지 염두에 두었을 리 만무하지만, 그 바탕이 된 유교가 21세기 한국에서도 일정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지은이의 주장은 나름의 설득력을 얻는다.
지은이는 결어 ‘한국인의 탄생’에서 1945년 이후 한국 사회를 빠르게 일별한다. 중앙집권에서 케이팝(K-pop), 민주주의까지 주제도 다양하다. 한국과 한국인을 만든 것이 무엇인지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중요한 일은 지금까지 노정(路程)한 길을 참고 삼아, 다시금 어디로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탄생’은 촌철살인과 과감한 주장을 덧붙이면서 참고할 만한 하나의 길을 보여주었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