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 연구 몰두하고 있는 정민 교수
서양 우정론 전파한 ‘교우론’·‘구우편’
연암 등 조선 지식인 열렬히 환호
“동시대 함께 살아가는 존재” 의식
서양 우정론 전파한 ‘교우론’·‘구우편’
연암 등 조선 지식인 열렬히 환호
“동시대 함께 살아가는 존재” 의식
17세기 예수회 선교사 아타나시우스 키르허가 만든 중국에 관한 백과사전(1670)에 실린 선교사 마테오 리치와 중국 지식인 서광계의 모습. 마테오 리치는 ‘천주실의’(1603) 이전에 ‘교우론’(1599)을 중국에서 펴낸 바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마테오 리치의 ‘교우론’과 마르티노 마르티니의 ‘구우편’
마테오 리치·마르티노 마르티니 지음, 정민 역주 l 김영사 l 2만5000원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1552~1610)는 본격적인 문명 교류의 물꼬를 튼 인물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을 번역한 ‘기하원본’(1607), 세계지도에 해설을 덧붙인 ‘곤여만국전도’(1602), 천주교 교리를 설명한 ‘천주실의’(1603) 등 한문으로 된 저작들이 그의 활동을 대표하는데, 그가 중국에서 가장 먼저 출간했던 것은 ‘교우론’(交友論·1599)이다. 서양 고전 가운데 우정에 관한 대목들을 골라내어 한문으로 집필된 이 책은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그 인기는 조선과 일본에까지 닿았다. 60여년 뒤 리치의 후배격인 예수회 선교사 마르티노 마르티니(1614~1661)는 서양의 우정 담론을 좀 더 본격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구우편’(求友篇·1661)을 펴냈다. ‘서양 선비, 우정을 논하다’는 고전학자 정민 한양대 교수가 ‘교우론’과 ‘구우편’을 우리말로 옮기고 역주한 책이다. 예수회 신부 판토하의 천주교서 ‘칠극’(1614) 번역, 조선의 초기 교회사를 집대성한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집필 등 서학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지은이는 이 두 책을 통해 문명 교류의 첫 번째 경로가 어떤 배경으로 형성됐는지 그려내는 한편, 그것이 조선 사회에 준 영향에 대해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교우론’은 별다른 체계 없이 잠언들을 모은 책이다. 애초 중국 선교를 위해 불교를 모방했던 선교사들은 유교를 모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보유론(補儒論)을 전략으로 삼았고, 리치는 그 선봉에 있었다. ‘사서’를 라틴어로 옮겼던 리치는 중국의 정신문화 속에 우정의 문제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깨닫고 “중국과 서양의 문화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알려 저들의 경계심과 거부감을 줄이는 촉매로 삼고자” 했다. 따라서 ‘교우론’은 “의도적으로 우정의 주제에만 집중”하고 있으며, 체계와 작법은 ‘논어’를 연상시킨다. 예컨대 “나의 벗은 남이 아니라 나의 절반이니, 바로 제2의 나이다”라는 첫 문장부터, ‘논어’의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를 연상시키며 ‘참된 우정’에 대한 보편적인 갈급을 겨냥했다. 반면 ‘구우편’은 첫 문장부터 “벗의 명부에 들어온 사람이 모두 한 분이신 지극히 존귀한 참주인임을 알아 우리의 큰 부모로 삼고, 삼가 잘 섬겨서 훗날 마침내 편안히 머물게 될 땅으로 삼기를 바랄 뿐”이라 썼다. “저술의 목적이 (…) 우정 자체가 아니라 천주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분량이 많고 더 정돈된 체계를 갖추었는데도 ‘구우편’은 ‘교우론’만큼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의 초상. 중국인 예수회 수사 유문휘가 그렸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르티노 마르티니의 초상.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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