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손호철 지음 l 이매진 l 2만6800원 1983년 봄 원경 스님과 소설가 김성동은 원주에 사는 김지하 시인을 만나고 돌아오던 길에 승용차가 골짜기 아래로 구르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 자신도 부상을 당해 피칠갑이 된 원경은 뇌수가 흘러내린 김성동을 업고 골짜기를 올라와 그를 병원 응급실에 입원시켰다. 김성동이 승려 경험을 바탕 삼은 소설 ‘만다라’로 이름을 떨치긴 했지만, 두 사람의 연결 고리가 승적만은 아니었다. 원경은 남로당 지도자 박헌영의 혼외자였고, 김성동의 부친 김봉한은 박헌영의 비선 조직으로 활동하다가 전쟁 중에 학살당했다. 선대의 이런 인연 때문에 “두 사람은 똑같은 아픔과 웅숭깊은 한을 나눈 혈육이나 다름없는 사이가 됐다.” 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가 쓴 ‘한 스님’은 원경(1941~2021)이라는 문제적 인물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상흔을 부조해 낸 평전이다. 수배 중이던 박헌영과 그를 돌보던 ‘아지트 키퍼’ 정순년 사이에서 태어난 원경은 아홉살 나이에 머리를 깎고 지리산으로 들어갔으며 결국 승려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조계종의 최고 법계인 대종사에 서품됐고 원로회의 부의장에 오를 정도로 종단 내에서 입지를 탄탄히 굳히는 한편, 예술가와 학자 및 민주화운동 진영 인사들의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했다. 소련이 무너진 1991년에는 모스크바로 날아가 박헌영과 주세죽 사이에서 태어난 배 다른 누나 박비비안나를 만나고, 2004년에는 9권짜리 ‘이정 박헌영 전집’을 출간하는 등 뿌리를 찾고 아버지를 기리는 일에도 열심을 다했다. 이런 그의 삶을 두고 손 교수는 “이상주의자 박헌영이 꾼 꿈을 복권하기 위해 현실주의자로 살아야만 했다”고 평가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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