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밖으로 몸을 솟구치는 혹등고래. 호주 동부 집단은 개체수가 늘어나자 노래하는 수컷이 크게 줄었다. 퀸즐랜드대 고래 생태학 그룹 제공
고래와 대화하는 방법
물속에 사는 우리 사촌들과 이야기하는 과학적인 방법
톰 머스틸 지음, 박래선 옮김 l 에이도스 l 2만3000원
지난달 13일 제주도는 멸종위기 국제보호종인 남방큰돌고래에게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자격(법인격)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사람 또는 사람이 만든 기관·단체에만 부여하던 법적 권리를 동물에게도 주자는 첫 제안인데, 그 첫 대상이 왜 하필 (돌)고래일까. 높은 지능과 인간적인(다르게 표현할 단어가 없어 고래에게 미안하다) 행동으로 사람과 가장 깊이 교감·소통하는 신비롭고 매혹적인 생명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래와 대화하는 방법’은 보전생물학자 출신 자연다큐멘터리 감독인 저자가 그런 특별한 생명체 고래의 숨겨진 삶과 능력을 안내해주는 책이다. 저자가 고래 탐구 여정에 나서게 된 계기부터 눈길을 끈다. 2015년 가을 어느 날 미국 캘리포니아 연안 몬터레이만에서 혹등고래를 관찰하다 고래가 덮치는 바람에 죽다 살아난 경험이다.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은 유튜브에서도 크게 화제가 됐는데, 결정적인 순간 몸체를 비튼 30t짜리 고래의 ‘배려’로 살아난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단다. 하지만 “고래에게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물어볼 수는 없어요.”
동종은 물론 종이 다른 생명체와 소통에도 뛰어난 고래의 신비스러움은 노래에서 잘 묻어난다. 50여년 전 고래의 노래를 세상에 알린 로저 페인이 “몇분 또는 몇시간 동안 계속되는 소리의 강물”이라고 한 그 음성(진동)을 온몸으로 접한 저자는 “마치 광란의 파티에서 스피커에 몸을 갖다 댄 것 같”은 “거의 종교적이면서도 정말 말도 안 되는 경험”이라고 표현한다. 혹등고래는 20m 물속에서 수직으로 선 채 노래하다 수면 위로 올라 숨 쉬고 다시 내려가 선 채로 노래하길 반복한다. 반복·변주되는 노래에는 운율이 사용되고, 노래 부르는 장소는 계속 바뀐다. 5천만년 전 뭍에서 바다로 돌아간 포유류인 고래는 정녕 인간의 사촌 아닌가!
“사람들이 고래와 맺은 유일한 연결고리가 포경업”이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수족관에 있던 돌고래들을 바다로 돌려보내고 법인격을 부여하려는 시절이다. 하지만 저자는 묻는다. 인간유전체프로젝트(DNA 염기서열 해독), 맨해튼프로젝트(핵무기 개발), 아폴로 프로그램(우주 탐사)에 어마어마한 재원과 인력을 투입해온 인간이 이웃이랄 수 있는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은 얼마나 기울였냐고. 저자의 바람처럼 언젠가 인간과 고래가 지적인 소통을 하는 날을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려지는데, 그때 고래가 고발할 인간들의 죄악들을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오싹해진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