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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제육볶음 위해 직접 돼지를 죽일 수 있습니까 [책&생각]

등록 2023-12-08 05:01수정 2023-12-08 13:43

동물권 변호사의 육식주의와 축산업 비판
“동물권은 기후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다”
공공 영역에서부터 채식 의무화로 나아가야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정현선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정현선

정상동물
동물은 왜 죽여도 되는 존재가 되었나
김도희 지음 l 은행나무 l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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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가 아니라 ‘물살이’이고, ‘수컷 돼지 다섯 마리’가 아니라 ‘남성 돼지 다섯 명’이다. ‘도축’ 대신 ‘도살’ 또는 ‘살해’라 쓰고, ‘폐사’가 아닌 ‘사망’이라 표현한다. 동물권 변호사 김도희의 책 ‘정상동물’을 읽자면 이런 종평등 언어에 익숙해져야 한다. 동물권을 옹호하고 함양하는 일은 언어를 바꾸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언어는 인식의 표출이며 실천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것은 언어를 둘러싼 싸움이다.

생각해 보면 ‘물고기’라는 말은 얼마나 잔인하고 냉혹한가. 물에서 헤엄치는 생명체들이 인간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되기 위해 태어나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 텐데, 우리는 그들을 오직 고기로만 간주한다는 뜻이 그 말에는 들어 있다. ‘물고기’에 빗댄 ‘육고기’, 그 말의 하위 범주인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같은 말들도 마찬가지다. 독립적이며 고유한 생명체인 소, 돼지, 닭을 ‘고기’ 차원으로 떨어뜨리는 언어의 폭력이다. 그런가 하면 영어는 한국어와는 반대 방향에서 사태를 호도한다. ‘소고기’에 해당하는 단어 ‘beef’, ‘돼지고기’를 뜻하는 ‘pork’에서는 소와 돼지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안심, 등심, 양지, 사태 같은 부위 이름, 갈비찜, 제육볶음, 두루치기, 보쌈, 족발, 스테이크 같은 음식 이름 역시 살아 있는 동물의 존재를 지우는 데에 일조한다. 대상화와 도살, 절단, 소비로 이어지는 ‘고기화 과정’을 통해 살아 있는 동물은 ‘고기’로 둔갑한다. 그러니까 “모든 육식 뒤에는 ‘고기’가 가리는 ‘동물의 죽음’이라는 부재가 존재한다.”

‘정상동물’은 동물권을 둘러싼 다양한 관점과 쟁점을 짚어 보고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책이다. 육식에 대한 비판과 채식주의(비거니즘) 옹호가 핵심을 이루는 가운데, 동물의 법적 지위와 동물에 대한 처우, 동물권과 기후위기의 관계 등을 아울러 다룬다.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론’과 톰 레이건의 ‘동물권리론’에서부터 동물 및 자연물에 대한 법인격 부여 움직임, 동물해방전선과 동물해방물결 같은 국내외 단체들의 직접적·투쟁적 활동에 이르기까지 동물권 운동의 다양한 흐름과 양상을 두루 담았다.

“만일 제육볶음을 먹기 위해 직접 돼지를 죽여야 한다면, 사람들은 제육볶음을 먹을 수 있을까. 돼지 멱 따는 소리, 솟구쳐 흐르는 피, 공포와 슬픔으로 가득한 눈을 견딜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육식 문화가 감추고 있는 잔혹한 본질을 들춰내고 무디어진 감각에 충격을 가한다. 제육볶음을 맛있게 먹는 우리를 위해 누군가는 살아 있는 돼지를 죽여서 ‘고기’로 만드는 일을 대신 해야 한다. 청부 도살이다. 청부 도살을 떠맡은 이들이 긴장과 고통에 못 이겨 드러내는 중독적·폭력적 행동은 참전 군인들이 호소하는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과 닮았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를 쓴 비건 운동가 멜라니 조이는 “고기를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육식주의라는 신념 체계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한다.” 동물성 단백질과 영양의 함수관계를 강조하는 일부 견해와 달리 육식이 결코 불가피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동물-산업 복합체가 주도하는 육식주의는 자본주의와 한 몸이 되어 굴러가고 있다.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지 못하는 동물로 나누는 이분법을 육식주의 이데올로기의 한 양상으로 제시한 조이의 견해를 발전시켜 이 책의 지은이는 ‘정상동물 이데올로기’라는 표현을 제시한다.

“인간은 일정한 시공간에서 인간과 맺는 관계에 따라(실은 인간의 편의에 따라) 동물을 임의로 구획하여 일정한 역할을 부여하고, 이를 당연한 것으로 믿는다. 개, 고양이는 반려동물, 토끼, 쥐는 실험동물, 소, 돼지, 닭은 식용동물, 돌고래, 원숭이는 전시체험동물, 기린, 사자는 야생동물 같은 식이다. 물론 중첩되는 동물들도 있다.”

식용동물뿐만 아니라 실험동물과 전시체험동물, 반려동물 역시 양보할 수 없는 권리를 지니고 있으며 인간의 필요에 따라 죽이거나 착취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책 제목에 담겼다. 식육을 얻기 위한 공장식 축산은 동물의 권리를 침해하고 자연사할 권리를 박탈함은 물론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위기를 가속시킨다. “축산업이 모든 운송업보다 지구온난화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며,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8%를 차지한다”는 2006년 유엔 식량농업기구의 보고서는 충격적이었다. “탈육식과 탈축산은 기후정의운동에서 탈석탄과 함께 매우 주효한 실천 수단이라는 점에서 동물권은 기후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산업의 이런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제출된 배양육과 동물복지농장 등에 대해 지은이는 비판적인 견해를 보인다. 배양육 생산에 드는 에너지와 자원이 공장식 축산에 못지않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도 결국 세포의 공급원인 동물의 감금과 도살이 수반될 것이고, 동물복지농장은 “육식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사라지게 만들고 면죄부를 줌으로써 동물을 자원, 원료, 대상으로 바라보는 종차별적 태도를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답은 비거니즘에 있다. “비거니즘은 동물권과 가장 연결성이 크고, (…) 인간과 동물과 지구의 안녕이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는 지향이자 생활양식”이다.

‘고기’와 우유, 계란을 대체하는 비건 음식이 충분히 개발되어 있음에도 비거니즘은 여전히 소수의 취향 정도로 취급되고 있다. 그럼에도 지은이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덴마크와 스웨덴, 독일 등지에서는 육류세를 부과함으로써 육식을 제어하고, 포르투갈과 프랑스는 정책적으로 채식을 장려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도 한 달에 두 번 채식 급식을 제공한다. 학교와 병원, 군대, 교도소 등 공공 영역에서부터 채식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비거니즘은 가능하고 실용적인 한도 내에서 배제적이지 않고 포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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