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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링컨을 저격한 트럼프의 유령들은 사라지지 않고 [책&생각]

등록 2023-12-15 05:01수정 2023-12-15 10:55

미국 작가 캐런 파울러 2022년작
암살자 존 부스의 가족 서사와
유효한 ‘남부연합의 망령’ 맞물려

미래 비추는 19세기 역사소설
1865년 4월15일 저녁 워싱턴 디시(DC)의 포드 극장에서 존 윌크스 부스는 재선 직후인 링컨 미국 대통령을 저격(기록화)한다. 총을 쏘면서 했다는 말이 “식 셈퍼 티라니스(Sic semper tyrannis)”다. “폭군은 언제나 그렇게 되리라”라는 뜻의 라틴어로, ‘폭군 링컨’을 처단했다는 얘기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1865년 4월15일 저녁 워싱턴 디시(DC)의 포드 극장에서 존 윌크스 부스는 재선 직후인 링컨 미국 대통령을 저격(기록화)한다. 총을 쏘면서 했다는 말이 “식 셈퍼 티라니스(Sic semper tyrannis)”다. “폭군은 언제나 그렇게 되리라”라는 뜻의 라틴어로, ‘폭군 링컨’을 처단했다는 얘기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부스
캐런 조이 파울러 지음, 서창렬 옮김 l 시공사 l 2만5000원

19세기 한 미국 정치인의 암살을 다룬 이 소설이 결국 미래를 비추고 있다면, 징후는 두 가지다.

하나는 1854년 열여섯 살이 된 남자 존 윌크스 부스(1838~1865)의 이민자 경험이다. 메릴랜드 볼티모어에서 자란 존은 “군인이 되고 싶고… 자신이 전투라는 거대한 가마 속의 찰흙처럼 뜨거운 불길에 달구어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아버지 대신 가족 농장의 농부가 되어 수확철 가장 값싸게 고용된 아일랜드 노동자들까지 관리하고 있다. 당시 흑인 노예들과 달리, 백인 일꾼은 고용주 가족과 점심을 함께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존은 이들이 경망스럽다며 배척한다. 화내는 아일랜드 노동자들을 두고 존은 토로한다. “이 사람들을 없애버렸으면 좋겠”다고.

영국계 혈통으로 노예제에 부정적이던 아버지나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 달리 존이 ‘남부인’으로서의 기질을 자못 선명하게 보인 첫 대목이다. 즈음 존은 무지당(Know-Nothing Party)에 가입해 있다. 무지당의 이슈는 ‘흑인씩이나’가 아니다. 이 단체의 목표는 반이민자다. 무지당이 볼티모어를 ‘접수’했던 그 시절, 당원 아닌 자가 투표를 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두 번째는 2021년 1월 전 세계의 경험이다. 트럼프 추종자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준을 막겠다며 미 연방 의사당을 무력 점거한다. 트럼프는 “우리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수호할 것을 결의한다. 우리는 싸울 것이다. 만약 죽도록 싸우지 않으면 당신에게 더이상 나라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외친다. 지독히 닮은 데가 있다. 남북전쟁 때 남북 경계주로서 지지자가 갈렸던 메릴랜드조차 주가(州歌)가 이러했다. “폭군의 발뒤꿈치가 당신의 해안에 있네, 메릴랜드! 그의 횃불이 당신의 신전 문 앞에 있네, 메릴랜드! 볼티모어 거리에 얼룩진 애국자의 선혈에 대해 복수하라…” 1절을 여는 말 ‘폭군’이 가리키는 자 누구인가. 바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해마다 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16대)이다. 트럼프가 싸워 지키자는 정부는? 링컨이 저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1863년 11월19일)에 새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다.

1865년 4월15일 저녁 워싱턴 디시(DC)의 포드 극장에서 존은 재선 직후인 링컨(1809~1865)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1861년 남부 연합이 준동해 발발한 4년간의 내전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제를 폐지하며 자유 평등 민주의 연방국가를 지켜낸 공화당 정치인이 미국 건국 이래 암살된 첫 현역 대통령으로 기록을 더하는 순간이다. 당시 존이 링컨을 쏘며 했다는 말이 “식 셈퍼 티라니스(Sic semper tyrannis)”다. “폭군은 언제나 그렇게 되리라”라는 뜻의 라틴어다. 존이 달아나며 떨어진 무대에서 뱉은 말대로 “남부가 (폭군에게) 복수를 한 거”란 얘기다.

남부연합의 망령인 셈인데, 중요한 것은 고작 3년 전에도 미국 정치 복판에서 유령이 아닌 실체로서 창궐했다는 사실이다. 남부연합 깃발도 휘날리며. 메릴랜드 주의회가 주가를 공식 폐기한 것이 그해 2021년이다.

다만 이 장대한 역사소설의 주인공은 링컨도, 존도 아니다. 암살 이후로도 살아갈 자, 즉 존의 부모와 형제들의 애증, 집 안팎의 공기 따위가 이루는 가족사로 대신 안내한다. 존(1838~1865)의 아버지 주니어스 브루터스 부스(1796~1852)는 당대 유명한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다. 1822년 부스는 볼티모어 외곽의 숲속으로 아내와 전입한다. 2층짜리 통나무집을 큰 비용 들여 통째 옮겨왔다. 뛰어난 배우이지만 음주 기벽이 심한 남편은 9개월은 순회공연으로 집을 비운다. 와중에 아내 메리는 열 명의 아이를 낳고, 넷을 잃는다. 존 윌크스 부스가 아홉째다.

작가는 과거를 때로 미래형으로 서술한다. 이런 식이다. “조니(존)는 아버지가 거짓 결혼으로 엄마를 속였으며 엄마는 나머지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아버지와 결혼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결론지을 것이다.” 이중결혼했던 아버지의 비밀을 드러내는 방식이요, 형성 중일 존의 미래 자아를 내다보는 방식이다. 또한 존의 가족과 동기화된 시점에 링컨의 개인사, 중대한 정치 사건 등을 삽입한다. 개인을 드러내어 종내 역사를 내다보는 셈이다.

1864년 셰익스피어의 작품 ‘줄리어스 시저’에 출연한 연극배우 존 윌크스 부스, 에드윈 토머스 부스, 둘의 아버지 주니어스 브루터스 부스(왼쪽부터). 위키미디어 코먼스
1864년 셰익스피어의 작품 ‘줄리어스 시저’에 출연한 연극배우 존 윌크스 부스, 에드윈 토머스 부스, 둘의 아버지 주니어스 브루터스 부스(왼쪽부터).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소설에서 단어 하나를 추려야 한다면 ‘연극’일 것이다. 당대 연극계는 스타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부스도 그 스타 중 하나였다. 그의 아들 에드윈(1833~1893)이 뒤에 부스를 능가하는 인기 배우가 되고, 존 또한 무대에 올랐다. 아버지의 전기를 같이 쓰자던 누이 에이시아에게 존은 “단순히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으로 알려지기보다는 그 이상의 어떤 것으로 알려지고 싶”다 말한다. 연극 애호가인 링컨이 여섯 차례 에드윈의 연극을, 한차례 존의 공연(‘마블 하트’)을 보았다는 사실, 존의 연기를 본 뒤 백악관으로 초대도 했다는 사실-게티스버그 연설 열흘 전이었다-, 링컨이 유달리 웃던 마지막 장소가 극장이란 사실, 그날 그 극장에서 공연 중 작품 ‘우리 미국인 사촌’과 전혀 다른 결미를 향해 존이 저격 뒤 독백과 같은 자신만의 망상적 ‘연기’를 펼쳤다는 사실은 셰익스피어의 희비극을 압축한 연극 한 편보다도 작위적이다. 소싯적부터 셰익스피어 작품의 대사를 외던 부스 가문의 아이들부터가 기이한 현실이었다.

소설은 링컨의 암살 현장으로 빨려가지 않는다. “셰익스피어의 아이들에게는 온 세상이 은유”라서, 열도 소리도 없이 서서히 끓어오르거나 식어가는 부스 가족의 서사에 집중한다. 미국이 가장 증오하는 이를 사랑(해야)한 가족들의 정체, 미국이 가장 존경하는 이를 증오한 시대의 정체가 그렇게 엮인다.

에스에스(SF)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역사, 스릴러 등을 넘나든 미국 작가 캐런 조이 파울러(73). 부커상 누리집
에스에스(SF)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역사, 스릴러 등을 넘나든 미국 작가 캐런 조이 파울러(73). 부커상 누리집

에스에프(SF)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캐런 조이 파울러(73)는 역사, 스릴러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부커상 최종후보(2014)에 최초로 미국 작품을 올린 작가가 된다. 2022년 부커상 후보(롱리스트)에 또 오른 작품이 ‘부스’다. 완성에 8년이 넘게 걸렸다. 부스 가문 장녀(로절리)를 제외하고 부단히 자료에 입각했다. 미국의 돋보이는 기록 문화를 방증한다. 아버지와 에드윈에 대한 책을 쓴 에이시아가 존의 책도 남겼다. 다만 자신이 죽은 지 50년이 지나서야 출간된다.

누구도 들끓는 존을 막을 수 없던 것처럼,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인들 또한 속수무책인 듯 보인다. 작가 역시 2017년 트럼프 당선 이후 “그에 대한 충격과 절망이 1년 이상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며, 그를 통해 “소설의 초점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결국 책의 주인공은 남부연합의 유령, 아니 트럼프의 유령들이다. 이 소설의 미래성에 대한 세번째 징후이겠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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