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동물을 위한 정의'에서 '역량 접근법'에 기초한 동물권을 논의한다. 시카고대 누리집 갈무리
번영하는 동물의 삶을 위한 우리 공동의 책임
마사 너스바움 지음, 이영래 옮김, 최재천 감수 l 알레 l 2만5000원 인간이 동물 세계, 나아가 지구 전체에 미치고 있는 (악)영향의 기하급수적인 확대,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폭발적으로 증가해 온 동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앎은 여지껏 우리 인간이 동물을 대해온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동물을 위한 정의’는 고전 철학을 토대로 법·정치·윤리의 문제를 두루 탐사해온 마사 누스바움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동물권, 또는 동물 윤리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종합해 정리한 책이다. 이제껏 인간만을 위해 쓰였던 도구인 법과 정치,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정의 개념을 다른 차원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동물법률단체 변호사로 활동하다 2019년 세상을 떠난 딸 레이철 누스바움에 대한 애도도 담겼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동물 세계엔 놀라운 다양성과 이질성이 있으나, 이 지구에서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살려고 노력”하는 존재들이라면 일반적인 유사성을 갖고 있다는 통찰이다. 인간이 인간적인 형태로 삶을 꾸려가듯, 동물은 각자의 다양한 형태로 삶을 꾸려간다.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 지구를 이용해야 한다는 우리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는 이유라면 그 어떤 것이든 동물도 같은 권리를 가졌다는 이유가 된다.” 자신과 다른 존재들에 대한 ‘경이’, 그들의 고통과 중요성을 함께 느끼는 ‘연민’, 그들이 겪는 부당함에 대한 ‘격분’(전환적 분노)이 우리 영혼의 눈을 뜨게 하고, 정의를 요구하는 행동을 일으킨다. 지은이는 동물권에 대한 기존의 접근법을 비판하며 자신의 제안으로 나아간다. “우리와 너무 비슷해서” 접근법은 인간과 같은 능력을 근거로 특정 동물 종을 인간처럼 대우하자 주장하지만, 인간을 가장 우월한 지위에 놓고 다양한 동물의 삶을 서열화하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공리주의는 인간과 같은 쾌고감수능력을 기준으로 삼아 동물권 논의를 넓혔으나, 단지 고통과 쾌락을 따지는 데에만 머물렀다.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를 결합해 동물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길을 연 크리스틴 코스가드도 여전히 인간을 가치의 중심에 놓는다. 이들은 “동물의 세계가 놀라운 다양성과 포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한다.” 지은이는 번영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에게 그 적절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역량 접근법’을 동물에 대한 논의에 적용한다. 공리주의 접근처럼 쾌고감수능력이 있는 모든 생물들을 대상으로 삼지만, 단지 고통을 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자유로운 이동, 호기심, 놀이, 계획, 사회적 관계 등 저마다 각기 다른 삶의 형태에 요구되는 다양한 역량을 보장한다는 것이 역량 접근법의 고갱이다. 이를 토대로 미래를 위해 어떤 법 체계를 꾸려나가야 할지도 논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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