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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2011년 북한군이 일본을 침공한다고?

등록 2006-04-06 17:18수정 2006-04-07 14:07

무라카미 류 <반도에서 나가라>
무라카미 류 <반도에서 나가라>
미국과 ‘친해진’ 북한군이, 미국이 ‘버린’ 일본을 점령한다
이때 일본을 구원하는 영웅은 ‘사회부적응 청년들’
그런데 왜 하필 북한인가? 자위대는 왜 그리 나약한가?
‘전쟁과 폭력’ 강조하는 무라카미 류…수상하다
일본의 인기 작가 무라카미 류(54)의 소설 <반도에서 나가라>가 번역 출간되었다. 윤덕주 옮김, 스튜디오본프리 펴냄, 전2권.

무라카미 류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일본 대중문학을 이끄는 ‘두 명의 무라카미’로 불린다. 등단작이자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와 또 다른 대표작 <69(sixty-nine)>을 비롯한 작품들에서 그룹섹스와 동성애, 마약, 폭력 같은 파격적인 소재를 거침없이 다루었다.

류가 지난해 발표한 <반도에서 나가라>는 2011년이라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2011년의 일본은 경제적으로 몰락한데다 민주당이 집권한 미국 정부와 사이가 벌어지는 등 국제적으로도 고립 상태에 빠진다. 오히려 북한은 미국의 새 정부와 핵사찰 합의 및 평화조약을 맺는다. 위기감이 일본 열도를 지배한다. 그런 가운데 북한의 개혁파 지도부가 놀라운 음모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북한 체제에 대한 반란을 표방한 소수 특공대로 하여금 일본 남서쪽 규슈 지역을 점령하도록 하는 것이다. 중국의 ‘괴뢰정부’ 수립 움직임을 견제하고 일본을 더욱 더 수렁에 빠뜨리고자 하는 이중의 목적에서다.

소설은 북한군 선발대 9명이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리는 후쿠오카 돔 구장을 점거하고 3만명의 관객을 인질로 삼는 2011년 4월 2일에서부터 500명에 가까운 증원부대가 도착해 규슈를 점령, 통치하는 과정을 거쳐 결국 이들이 몰락하는 4월 11일까지의 열흘 동안을 중심 시간대로 삼는다. 소설의 큰 축은 세 그룹. 북한군 특수부대원들, 총리대신을 비롯한 도쿄의 관료들, 그리고 이시하라라는 사내가 이끄는 일단의 사회부적응자 혹은 무정부주의 성향의 청(소)년들이다. 작가의 눈에 비친 관료들은 무능하며 비겁하기 짝이 없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책임과 권한을 회피하려고만 하며 국가의 안위나 위엄보다는 개인의 안전에만 매달린다. 이들에 대비되어 그려지는 것이 엽기적 폭력 또는 살인의 이력을 지닌 자들로 이루어진 이시하라 그룹이다. 사회부적응 청소년들에 대한 류의 애착은 등단작에서부터 지속되어 온 바 있다. <반도에서 나가라>에서 이들은 차라리 일본을 구할 영웅으로 그려진다. 일본 정부와 군대는 물론 미국과 중국, 한국 등 주변국 그 누구도 나서지 않는 가운데 북한 점령군을 상대로 용감하게 싸워 그들을 물리친 거둔 게 결국 이들인 것이다.

‘교섭과 커뮤니케이션’ 의도 안읽혀

작가의 능란한 필치 덕분에 소설은 매우 잘 읽힌다. 9명의 북한군 선발대원과 스무 명 남짓한 이시하라 그룹 성원 개개인의 배경과 이력, 그리고 능력과 특이 성향에 대한 묘사는 과장된 느낌이 있는 대로 독자의 흥미를 지속시키는 효과를 지닌다. 군사작전과 폭약 및 폭파, 독개구리와 전갈 및 노랑초파리 등에 관한 전문적인 서술은 소설을 위해 작가가 들인 공력을 짐작케 한다. 책의 말미에는 그가 참고한 200여 권의 책과 영상 자료 및 웹 사이트 목록도 제시되어 있다.


작가는 후기에서 교섭과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일본 정부와 국민에게 알리고자 이 소설을 썼노라고 밝혔다. 아름다운 말이다. 문제는 소설을 읽는 동안 작가의 그런 의도가 온전히 와 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교섭과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려 한다는 작가가 북한군 특수부대의 일본 침공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한 까닭을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군 특수부대의 효율성 및 파괴력과 일본 자위대의 무능 및 무기력이 대비적으로 강조되어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북한군은 과연 일본을 침략할 정도의 능력과 필연성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자위대는 소설에 그려진 대로 나약하기 짝이 없는 걸까. 미국의 지원이 없으면 불과 수백 명 규모의 특수부대에 국토의 일부를 점령당할 정도란 말인가. 스스로 군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위대의 연간 예산은 많게는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드는 막대한 규모로 추정된다. 한반도의 남과 북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침략 전력이 있는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에 비해 북한은 자국 인민을 먹고 입히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 가난한 나라다. 모험주의 내지는 자포자기 식이 아니라면 북한군이 일본 영토를 침공한다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런 일본의 뒤에는 세계 최강 미국이 버티고 있다. 물론 소설 속 가상 미래에 미국은 일본을 ‘버리고’ 오히려 북한과 가까워져 있다. 사실 미국에 대한 이런 반감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이후 무라카미 류에게는 일관된 것이다. 고이즈미 내각을 비롯한 일본의 ‘친미’ 주류파들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태도라 하겠다. 그러나 이런 류의 태도야말로 더욱 위험한 것일 수도 있다. 류는 소설 속에서 북한군 특수부대원의 독백을 빌려 “어째서 자위대는 고려원정군(=북한군 특수부대)을 공격하려 들지 않을까?”(상권 300쪽) 하는 의문을 표한다. 그에 대한 답인 듯 관방장관은 “어쨌거나 아직 헌법9조가 있으니 그럴(=북한을 공격할) 순 없죠”(상권 345쪽)라고 말한다. 헌법 9조란 일본 헌법상 ‘전쟁 포기’ 조항을 가리킨다. 작가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헌법 9조의 폐기와 자위대의 무장 강화를 공공연히 주장했다는 사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한국 감독이 이걸 영화로 만든다니

작가는 소설 곳곳에서 ‘부드러운 일본’에 대한 개탄과 분노를 표한다. “일본인이 아프리카인 차림으로 조선사람에게 꾸벅꾸벅 인사를 하다니”(상권 189쪽)라든가 “일본이라는 나라는 뭐든지 이 종이처럼 부드럽다”(상권 301쪽)와 같은 대목이 대표적이다. 일본 본토에서 전쟁을 겪은 경험이 드물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본적 부드러움’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거니와, 그런 것을 체념으로 표현하며 폭력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데에 이르면 아찔하고 두렵기까지 하다. 자위대 궐기를 촉구하며 할복한 류의 선배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망령이 떠오르는 것이다.

“체념이란 거대한 힘에 따르기로 함으로써 거대한 힘에 대한 저항을 포기한다는 말이다. 힘은 폭력을 내포하며, 폭력에 의해 지탱된다. 긴 평화에 젖어 폭력에는 익숙하지 않은 인간은 비인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싫어하고 비인간적 폭력에 당하는 것도 싫어한다. 처음부터 폭력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폭력을 상상할 수 없는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을 리가 없다.”(상권 406쪽)

류가 생각하는 교섭과 커뮤니케이션이란 전쟁과 폭력의 다른 말일까. 그런데 이런 ‘수상한’ 소설을 한국의 감독이 영화로 만들려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심란하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씨네21> 서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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