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소설집 <강산무진>
등대지기·권투선수·스님…다양한 인물 세부묘사 ‘꼼꼼’
그런데도 그들은 사실상 ‘동일인’처럼 보인다
하나같이 ‘인간적 체취’를 지워버렸기 때문
작가의 단일한 자아 감추기 위한 ‘위장막’은 아닐까?
그런데도 그들은 사실상 ‘동일인’처럼 보인다
하나같이 ‘인간적 체취’를 지워버렸기 때문
작가의 단일한 자아 감추기 위한 ‘위장막’은 아닐까?
김훈(58)씨가 첫 소설인 장편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펴낸 것은 1995년이었다. 그는 그 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개>로 이어지는 장편소설들을 꾸준히 내놓았다. 첫 단편인 <화장>을 발표한 것은 2003년이었으며 이 작품으로 그는 단박에 권위의 이상문학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다음 단편 <머나먼 속세>를 발표한 것은 그로부터 다시 1년 반 만이었다. 2005년에는 네 번째 단편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김훈씨의 첫 소설집 <강산무진>(문학동네)에는 문학상 수상작들을 포함해 모두 여덟 개의 단편이 실렸다. 표제작의 제목은 조선 후기 화가 이인문의 그림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에서 왔다.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라는 점에서부터 김훈 소설집에 대한 접근을 시도해 보자. 주인공들은 매우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크고 작은 기업체의 전·현직 사장이나 간부가 있는가 하면 등대지기, 역사 교수, 강력계 형사, 전업주부, 권투선수에 택시 기사와 스님까지 등장한다. 같은 기업체라고 해도 화장품회사와 식품회사, 전자회사처럼 서로 다른 업종으로 갈린다. 작가는 이들 직업의 세계를 꼼꼼히 취재해서 치밀하게 묘사해 놓고 있다. 이런 점은 “저녁반 택시 운전사 김장수(47세)”라든가 “등대장 김철(40세, 6급 수로직)” 식의 표현과 함께 기자 출신인 작가의 배경을 알려줌과 동시에 소설의 사실성과 구체성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인물들의 배경이 이렇게 다양한 직군과 직종으로 갈리는데도 그들이 사실상 동일인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야말로 김훈 소설의 핵심이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김훈 소설의 주인공들은 좀처럼 흥분하거나 감격하지 않으며 슬픔과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들은 냉정하고 과묵하다. 그들은 감정의 표출을 부질없는 낭비이거나 소모라고 여기는 듯하다. 배우자의 죽음(<화장>)이나 자신에 대한 치명적 ‘선고’(<강산무진>) 앞에서도 그들은 요란을 떠는 법이 없다. 그저 냉철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죽음 이후를 대비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린 딸이 마침내 오줌을 가리게 됐다는 낭보에 접해서도 젊은 아버지가 하는 말은 “좀 자라는 모양이군”(<고향의 그림자>)이라는 무뚝뚝한 한마디가 전부다.
혼자 견디지 못하는 자는 ‘반칙’
이런 것을 ‘성숙’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세상사란 뻔하고 마침내 허무한 것이어서 도대체가 안달하고 복달할 일이란 없다는 식의 태도에서 인간적 훈기를 맡기란 쉽지가 않다. 김훈씨의 소설에서 구체적인 직업의 세계가 사실적으로 재현되고 뼈와 살과 피와 체액 같은 육체의 구성 성분이 거의 자연주의적으로 묘사되는데도 불구하고 그 인물들은 오히려 살아 있지 않은, 추상의 느낌을 주는 것은 그들에게서 인간적 체취가 제거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칼의 노래>의 이순신과 <현의 노래>의 우륵은 물론, 단편들의 주인공인 회사 간부와 강력반 형사, 역사 교수 등이 두루 동일한 인물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 탓일 것이다. 그렇다면 세부 묘사의 구체성과 다양성은 실제로는 작가의 단일한 자아와 성격, 그리고 완고한 신념(=허무주의)을 감추기 위한 위장막이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김훈 소설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특징적 면모로 단독자적 세계관을 들 수 있다. 이번 소설집 표제작의 주인공은 그림 <강산무진도> 앞에서 그것이 “내가 혼자서 가야 할 가없는 세상과 세간의 풍경” 같다고 생각한다. <화장>의 주인공은 고통스럽게 병과 싸우는 아내를 보며 이렇게 술회한다: “나는 아내의 고통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아내의 고통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고통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용된 문장과 작품만이 아니라 소설집의 도처에서 작가는 ‘알 수 없다’ 계열의 표현을 자주 쓰는데, 그것은 겸손의 말이라기보다는 비정한 불가지론의 언어라고 하는 쪽이 옳을 것이다. “다들 견디니까”라는, <배웅>의 주인공의 말을 다소 삐딱하게 비틀자면 김훈 소설의 세계에서, 혼자서 견디지 못하는 자들은 말하자면 반칙을 범하는 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소설집 <강산무진>은 소멸의 미학에 바쳐진다. 소설집에는 죽음과 질병, 치매와 퇴직, 심지어는 폐경에 이르기까지 저물어 스러지는 것들의 풍경으로 만연하다. 물론 <화장>의 주인공이 은밀하게 연정을 품고 있는 부하 직원 추은주의 싱싱한 육체, 또는 어린 딸아이의 깜찍한 성기에 대한 묘사(<고향의 그림자>)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추은주의 젊음은 늙어서 죽어 가는 아내의 비루한 육체를 배경으로 부각될 뿐이며, 오줌을 가리게 된 딸아이의 기특한 성장은 치매에 걸려 변을 가리지 못하게 된 어머니의 노망에 대비되어 제시될 따름이다. “항문 괄약근이 열려서, 아내의 똥은 오랫동안 비실비실 흘러나왔다”(<화장>)와 같은 문장은 우리가 애써 눈 감고자 하는 인간 육체와 생명의 잔인한 진실을, 종주먹을 디밀 듯이 독자에게 들이댄다.
돈이라는 ‘헛것’ 지배하는 현실 고발
작가가 강조하는 또 다른 진실의 이름은 바로 ‘돈’이다. 책에는 죽은 아내의 입원비에서부터 퇴직금과 보험 해약금, 택시 요금에다 이혼 위자료와 부의금까지 온갖 출처와 용처의 돈에 관한 언급이 차고 넘칠 정도로 등장한다. <강산무진>이라는 작품은 과장하자면 시한부 판정을 받은 주인공이 퇴직금과 아파트 판매 대금, 주식 처분금, 반납한 어머니 묘지의 임대 보증금 등속을 살뜰히 챙겨서 아들이 있는 미국으로 떠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라 요약할 수 있다. <화장>의 중간께에서 화자는 “헛것들이 사나운 기세로 세상을 휘저으며 어디론지 몰려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스모키한 헛것들의 대열 맨 앞에 있었다”고 토로하는데, 물론 작가의 의도는 돈이라는 ‘헛것’이 지배하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고발하려는 데에 있을 터이다.
김훈씨의 소설들은 매혹적인 미문과 불편한 세계관 사이에서 독자를 망설이게 한다. 소설 속에서 문장과 세계관은 뗄 수 없이 한 몸으로 버무려져 있는 것이지만, 할 수만 있다면 그 둘을 해체 재구성해서 다른 형태의 소설을 빚어내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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