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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물질은 생명 낳고 진화는 생명 길러

등록 2005-02-18 16:25수정 2005-02-18 16:25

 창조적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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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진화 \\
사물의 속성은 지속
지속의 한 예가 진화
진화는 연속이자 비약
비약은 이를테면 창조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1859~1941)은 한때 일군의 독일어권 철학자들과 묶여 소개됐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프리드리히 니체, 빌헬름 딜타이 같은 실존주의 색채가 짙은 ‘생철학’의 일파로 이해된 것이다. 최근 들어 프랑스 현대 철학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베르그송 철학은 프랑스 철학의 계보 속에 다시 자리매김되고 있다. 멘 드 비랑에서 출발해 베르그송을 넘어 조르주 캉길렘으로, 마침내 질 들뢰즈로 이어지는 독특한 프랑스적 사유의 한 중요한 변곡점으로 그가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르네 데카르트 이후 독일어권으로 넘어갔던 서구 철학의 본무대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베르그송이 철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프랑스 철학 전공자 황수영씨가 옮긴 <창조적 진화>는 베르그송 철학을 가장 풍부하게 담고 있는 그의 대표작이자 베르그송을 국제 철학계의 명사로 만든 출세작이다.

프랑스 철학의 특징은 거의 언제나 개별 과학들의 성과에 기초해 철학적 사유를 펼친다는 점에 있다. 베르그송의 경우는 전형적이어서, 그는 자기 고유의 철학을 생물학·물리학·심리학 등의 경험적 연구에 기대어 진전시켰다. <창조적 진화>에서 그가 집중적으로 살피는 영역은 생물학, 특히 진화생물학이다.

베르그송 철학은 한마디로 줄이면, ‘지속의 형이상학’이라고 할 수 있다. ‘지속’은 그가 평생 파고든 철학적 주제였다. 그는 젊은 시절 직관적 인식을 통해 지속이야말로 인간과 사물을 포함한 만물의 존재 양식임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모든 것은 지속, 다시 말해 끊임없는 흐름과 운동 속에 존재한다. 이 지속의 철학은 서구의 정통 형이상학을 뒤엎는 발상이다. 정통 철학은 만물의 존재 형식을 공간 속에 일정한 크기로 존재하는 형상으로 이해했다. 진정한 존재를 운동 기능이 멈춘 영원한 정지체라고 본 것인데, 베르그송은 이런 사고방식이 인간 지성의 불완전한 능력이 빚어낸 결과라고 말한다. 사물의 속성은 지속에 있으며, 고정되고 정지된 상태는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인식의 표상형태일 뿐이다.

이 지속의 철학을 진화생물학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 우주론적 형이상학으로 들어올린 것이 <창조적 진화>다. 그는 이 저작에서 생명과 물질의 대립을 근원적으로 해소해 세계를 일원론적으로 해석하려 한다. 생명현상에서 ‘지속’을 가장 비근하게 보여주는 것이 ‘진화’다. 모든 생명체가 어떤 기원에서부터 끝없이 전개돼 왔다는 것이 진화론인데, 베르그송은 그 진화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진화는 연속임과 동시에 질적 비약인데, 그 비약이 이를테면, ‘창조’다. 생명현상의 지속은 ‘창조적 진화’의 형식을 띤다는 것이다. 이때의 ‘창조’는 베르그송의 다른 유명한 개념으로 풀면 ‘엘랑 비탈’(생명의 비약·약동)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생명이 물질과 연속적 관계에 있다는 베르그송의 설명이다. 생명과 물질은 우선은 대립적이다. 우주 속의 모든 물질은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데, 생명 현상은 이 엔트로피 법칙을 거스르는 특수한 현상이다. 적절한 조건 아래서 물질적 흐름을 거스르는 에너지가 충만해지면 우주 어디서든지 생명이 탄생할 수 있다고 베르그송은 말한다. 그는 생명 탄생 현상을 ‘수증기 비유’로 설명한다. 고압의 수증기통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와 물방울이 맺히는 장면을 떠올려 본다면, 이때 솟아오르는 수증기는 생명의 에너지와 같고, 물방울이 맺혀 떨어지는 것은 새로운 생명체가 태어나는 것과 같다. 물질 속에서 생명이 파생하고 그 생명이 진화를 통해 이어진다면,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인간의 출현까지 모든 것이 ‘지속의 철학’으로 설명되는 셈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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