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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도올의 캄보디아·베트남 ‘문명 충격’

등록 2005-02-18 17:32수정 2005-02-18 17:32

앙코르와트·월남 가다 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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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월남 가다 상·하 \\
철학자 김용옥씨는 전방위의 지식 탐험가다. 그의 예민한 인식의 더듬이는 음식과 섹스 같은 가장 본능적인 생활세계에서부터 철학·종교 같은 가장 정신적인 관념세계까지 촘촘하게 뻗쳐 있다. 그 더듬이로 빨아들인 관찰과 사유의 자료들을 그는 대단한 특유의 입심으로 풀어낸다. 〈앙코르와트·월남 가다〉는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여행하고 쓴 책이다. 그가 쓰면 여행기도 철학서가 된다. 그의 입을 빌리면, “여행담의 형식을 빌린 문명론”이다. 좀더 부풀려 말하면 “이것은 조선인이 아시아 문명권에 관하여 사상적 메스를 가한 매우 조직적인 문명론의 한 독창적 전기”인데, 책은 그 자부가 헛말이 아님을 입증한다.

지은이가 여행한 캄보디아와 베트남은 제국주의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다는 역사를 공유하고 있고, ‘인도차이나’라는 제국주의적 지리용어로 묶여 있는 서로 맞닿은 두 나라다. 하지만 지은이는 두 나라가 전혀 다른 세계관으로 나뉜 별개의 땅으로 본다. 우선 두 나라는 문명권이 다르다. 캄보디아는 인도 문명의 압도적 영향 아래 자신의 문화를 꽃피웠고, 베트남은 중국 문명의 지속적 유입으로 유교 문화를 체화했다. 그리하여 캄보디아가 브라만교와 불교의 ‘신화적’ 세계를 구현했다면, 베트남은 유교의 현실주의에 입각한 ‘인문적’ 세계를 펼쳤다. 지은이는 신화와 인문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두 세계를 그의 날카로운 펜끝으로 그려낸다. 특히 캄보디아 문명에 대한 설명은 정밀하고 풍부하다.

지은이는 모든 여행이 진정한 여행이 되려면 ‘공포의 체험’을 동반해야 한다고 말한다. 낯선 것 앞에 대책없이 마주설 때 기존의 관념체계가 흔들리는 경험, 그 공포의 경험이 없다면 여행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캄보디아와 베트남 여행은 그런 뜻에서 강렬한 공포 체험이었다. 캄보디아의 경우, 그에게 두려운 경이를 불러일으킨 것은 크메르제국시대(802~1431)에 축조된 거대한 사원들이었다. 프레아코·베테이스레이·앙코르톰과 같은 위대한 석조문화의 유적을 관람하고 마침내 앙코르와트에 이르러 그는 인간의 상상력과 에너지와 심미안이 실현할 수 있는 창조의 최대치를 목격한다. 이마누엘 칸트가 말한 ‘숭고미’를 능가하는 아찔한 인류 예술의 걸작품들 앞에서 그는 두려움 섞인 놀라움에 휩싸이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는 이 앙코르와트의 경이로운 건축물들이 인간의 세계를 배제한 신성의 세계, 천상의 판테온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크메르 제국 사람들은 땅위에 하늘을 지으려고만 노력했다.” 인간의 냄새가 나지 않는 신의 세계는 제국이 무너진 뒤 ‘자연의 회귀’, ‘자연의 복수’ 속에서 밀림에 묻혀 버렸다.

베트남에서 그가 겪은 공포는 느낌이 아주 다르다. 그는 제국주의 미국의 침탈에 대항해 영웅적 항쟁을 벌였던 베트남 민중의 불굴의 저항정신이 깃든 꾸찌 땅굴에서 그 공포를 느낀다. 지하 3층에 걸쳐 장장 250㎞나 이어진 그 좁다란 땅굴세계야말로 제국의 잔혹한 화력을 막아낸 베트남 민중의 도덕적 결속의 처절한 발현물이자 “만리장성의 스케일을 몇천만 배 능가하는 위업”이며 “인간이 태어나서 꼭 한번 가봐야 할 곳, 인류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의 하나”다. 천상의 신성이 아닌 땅밑의 인간에게서 그는 더 큰 감동을 받은 듯하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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