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사는 삶 ‘웰빙’과는 달라요
‘슬로 라이프’란 말 그대로 ‘느리게 사는 삶’을 뜻한다. 그 말에서 이즈음의 유행어인 ‘웰빙’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환경운동가 겸 문화인류학자 쓰지 신이치가 쓴 <슬로 라이프>는 느리게 사는 삶과 웰빙을 구분할 것을 주문한다. 한마디로 웰빙은 기존의 대량소비사회적 생활방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느림’의 가치도 덤으로 얻겠다는 ‘덧셈의 발상’인 반면, 슬로 라이프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기존의 혜택을 과감히 포기하는 ‘뺄셈의 발상’이라는 것이다. 한국계 일본인(한국이름 이규)으로 <슬로 이즈 뷰티풀(느린 것이 아름답다)> 등의 책을 낸 바 있는 지은이는 이 책에서 슬로 라이프의 다양한 현장과 실천 방안을 70개의 열쇠말로 나누어 소개한다. 산책, 지역 통화, 에코 투어리즘, 자동판매기-물통, 언플러그드, 슬로 카페 등이 그 몇 사례다. 지은이는 겉보기에 진화의 실패작처럼 보이는 나무늘보가 사실은 저에너지·순환형·공생·비폭력·평화의 생활방식을 구현하는, 슬로 라이프의 상징적 존재라고 강조한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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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표현력 현대인 시선을 잡다
<진주 귀고리 소녀>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는 렘브란트와 함께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렘브란트가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인물의 초상을 박진감 넘치게 묘사했다면, 베르메르는 일상의 한 장면을 스냅사진을 찍듯 화폭에 옮겨 생생하게 표현했다. 균형과 조화가 두드러진 인물과 소품은 연속되는 활동사진의 움직임 탁 끊겨 정지상태로 고요와 정적의 한 순간에 머무른다. 그런데 그 정지된 화면은 사진보다 더 생생하고 영화보다 더 현실적이다. 일본의 베르메르 연구자 고바야시 요리코는 <베르메르, 매혹의 비밀을 풀다>는 베르메르 회화가 왜 그토록 현대인의 시선을 사로잡는지 하나씩 따져보았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명화의 비밀>에서 베르메르의 극사실적 묘사가 ‘카메라 옵스쿠라’라는 광학기구의 도움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고바야시는 그것이 신빙성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베르메르의 그림은 극한의 섬세함으로 빚어낸 순수한 표현력의 승리라는 것이다. 비밀에 싸인 베르메르의 삶을 추적하는 장면도 흥미롭다.고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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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통해 본 서양 중세 참모습
서양 중세 1000년을 ‘암흑시대’라고 규정하는 것이 근대 서구 합리주의의 성취를 드높이려는 모종의 암묵적 공모의 결과임은 이제 학문적 상식이 됐다. 중세는 특수한 국면, 특수한 영역에서만 상대적으로 빛이 가려져 있었을 뿐 서양 세계 전반을 넓게 본다면 그 시대는 후퇴가 아닌 변화나 분화로 기록될 시대였다. 서양의 ‘후기 고대 사회’ 연구의 권위자인 피터 브라운이 쓴 <기독교 세계의 등장>은 우리에게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은 중세 시대의 여러 양상을 기독교를 열쇳말로 삼아 드넓게 살피는 저작이다. 312년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로 개종한 이래 1000년 유럽의 최변방 아일랜드가 기독교화하기까지 긴 시기를 그는 비잔틴 제국, 이슬람 제국, 서유럽 세계 등 크게 세 영역으로 분할해 그 세계의 실상을 종합적으로 살핀다. 기독교가 이 세 지역에서 어떻게 변모하고 각각의 운명에 적응해가는지 추적하다보면, 다채롭고도 역동적인 중세의 큰 그림이 그려진다. 콥트어·시리아어·아르메이아어·그루지야어·소그드어 등 수많은 고대 언어로 전해져 내려오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책 안에서 울려 나온다. 고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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