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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90년대 소련쪽 문서 공개로 ‘북침설’ 힘잃어

등록 2006-06-23 20:31

한국전쟁 연구의 흐름
한국전쟁은 적어도 학문 연구자들에겐 ‘매혹적인 의혹’으로 가득찬 역사다. 정병준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전 초기부터 전쟁은 미궁이었고 연원과 도발자에 대한 의혹으로 가득했다.”

한국전쟁 연구는 남침설, 북침설, 남침유도설 등 전쟁의 기원과 책임을 둘러싼 공방으로 점철됐다. 60년대까지 남한·북한·미국은 공식전쟁사를 간행했지만 객관적 서술에 한계가 많았다. 학자들의 연구는 70년대 이후 본격화됐고, 그나마도 국내보다 국외에서 정치외교학의 탐구대상이 됐다.

전통주의와 수정주의가 큰 흐름을 이뤘다. 전통주의는 전쟁의 기원을 소련의 팽창주의적 대외정책에서 찾는다. 반면 수정주의는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에 주목한다. 70년대의 초기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는 전쟁의 원인을 미·소 등 외부에서 찾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사료의 부족으로 인해 가설을 중심으로 이론을 구성했다는 점도 닮았다. 전통주의는 남침설, 수정주의는 북침설·남침유도설 등으로 대표된다.

한국전쟁 연구는 자료의 공개를 매개로 전환점을 맞았다. 1977년 미국 쪽 자료가 기밀해제되면서 첫번째 비약을 이뤘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1981년)에 대해 정 교수는 “당시 수준에서 미국 학계가 도달할 수 있었던 한국전쟁 연구의 최고봉”이라고 평가했다. 커밍스는 50년대 미국 언론인 스톤, 70년대 인도 캘커타대 교수 굽타 등이 제시한 수정주의 가설을 종합했다.

그러나 소련과 북한 관련 자료를 아우르지 못한 것이 약점이었다. 90년대 이후 동구권 붕괴에 이어 소련 쪽 문서들이 공개됐다. 이 자료들의 공개를 계기로 학계에선 ‘북침설’이 힘을 잃은 상태다. 정 교수는 “남한의 호전적 대북공격 의도를 보이는 문서는 많지만, 남한이 6월25일 먼저 공격했음을 입증하는 문서는 단 하나도 없다”고 썼다. 이후 수정주의는 해방 정국에서 일어난 빨치산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한국전쟁을 파악하는 ‘내전’의 시각으로 옮겨갔다. 아울러 전통주의·수정주의를 동시에 넘어서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정 교수는 한국어로 적힌 북한 쪽 문서를 적극 활용하면서 외국 학자들이 일구지 못한 새로운 진전을 모색하고 있다. 정 교수가 보기에 당시 남한은 스스로를 (북에 대한) 공격자라고 확신하며 방어 전략을 전혀 고려하지 않다가 기습공격을 당했다. 북한은 북침 위협이라는 도발에 맞서 정의를 구현한다는 명분으로 선제공격을 펼쳤다. 미국은 호전적 대북 정책을 펼치던 남한을 견제하다가 전쟁 발발의 징후를 무시했다. 소련은 미국의 참전을 두려워하면서도 김일성의 도발을 시인하고 사실상 전쟁을 지휘했다.

누구의 책임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정 교수의 〈한국전쟁〉은 모호한 미로와 같다. 그러나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를 궁금해 한다면 그 미로는 고속도로로 변신한다. 56년 전의 한반도를 찾아가는 길이다.

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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