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의 성정치
캐럴 J. 아담스 지음. 이현 옮김. 미토 펴냄. 16000원
캐럴 J. 아담스 지음. 이현 옮김. 미토 펴냄. 16000원
고기는 몸에 이롭다는 담론
고기를 얻으려는 폭력 정당화
‘고깃덩이’ 여성 학대도 유사
고기를 얻으려는 폭력 정당화
‘고깃덩이’ 여성 학대도 유사
채식을 하는 이들은 흔히 몇가지 ‘모범 답안’을 준비해놓고 산다. 부지불식간 받게 될 질문 때문이다. “왜 고기를 안 먹어?” 듣는 이의 상황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해 상대방의 심적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내놓는 답들은 이런 류다.
1. 의사의 충고로. 2. 소화가 안 돼서. 3. 키우던 동물 생각이 나서. 4. 죽은 동물을 먹는 것에 대해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5. 정치적인 이유로. 6. 영성 또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대개 여섯가지 가운데 진짜 답이 (한가지든 여러가지든) 있다. <육식의 성정치>를 쓴 페미니스트 캐럴 J. 아담스는 3번에서 시작해 4번으로 넘어갔다가 5번에 이르러 책을 썼다. 초판을 낸 지 10년만에 그의 생각은 이제 슬슬 6번으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이 책은 페미니즘·채식주의·동물옹호 이론을 폭넓게 다룬다. 육식 위주의 문화권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일찌기 육식의 성정치학에 대한 책을 썼지만 이 책만 “전위운동의 고전”이라는 평을 얻었다. 페미니즘과 채식주의 앞에서 주춤거리는 이들에게 이론과 실천의 합일을 주장하며 부채감을 던져주는 일종의 전위운동적 성격이 실제 엿보인다.
자신은 채식주의자이면서도 남편에게 고기를 주는 여자들, 고기 요리를 내놓는 평화운동가들, 채식주의와 사회운동의 연관성을 깨닫지 못하는 페미니스트들을 만나면서 지은이는 혼돈스러워한다. 이들이 무지하거나 무심하거나 실천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지은이는 “페미니즘이 이론이라면 채식주의는 실천”이라고 말한다. 동물 억압과 여성 억압은 긴밀하게 관련이 돼있고,“나는 동물을 먹지 않는다”는 선언은 주체성의 선언이자 동물과 자신의 연관성을 선포하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채식주의 페미니스트가 역사적 텍스트 속에서 가부장제 문화가 어떻게 육식을 정당화해왔는지 분석하는 일은 당연한 차례 같다. 그는 과학을 동원해 여성의 열등성을 설파하던 학자들의 주장에서 육식=우월성=남성성을 연결시킨 혐의를 찾아낸다. 채식 위주 동양인을 “진화하기 이전 단계”라며 식민 지배를 정당화한 서구 제국주의의 잔영을 곱씹는다. 결국 “인종주의는 고기가 최상의 단백질 원천이라는 생각 속에 항상 내재돼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채식 기반 모계제가 육식 기반 가부장제에 전복되었다는 페미니스트 윤리학자 굴드 데이비스의 주장도 받아들여 논리를 보탰다.
페미니즘과 채식주의가 만나는 지점을 지은이는 여성과 동물에게 가하는 학대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찾는다. ‘고기’가 죽은 동물의 존재와 분리되는 순간 ‘고기’는 움직이는 이미지가 되고, 이 이미지는 여성과 동물의 상태를 지시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는 풀이다. 성폭력이나 남편 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내 몸이 고깃덩어리 같았다”고 말하는 데서 그는 “존재가 처한 운명의 메타포”를 발견했다. ‘고깃덩어리’ ‘암퇘지’로 표현하는 여성의 육체는 이미지의 소비이며, 따라서 여성을 대상화한 공공연한 농담을 주고 받는 것이 문화의 한 방식으로 용인되면서 여성혐오증까지 불러일으킨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고기와 여성에 대한 지배를 동일시 하는 쪽은 가부장이다.
나아가 성정치란 말을 남녀 사이뿐만 아니라 인간과 고기로 만들어지는 동물의 관계 속에 내재된 체계에까지 아울러 쓴다. 남성다움은 육식과 타자의 신체에 대한 통제를 통해 구조화하며, 페미니즘은 인간과 다른 동물간의 사회적 관계와 구조를 밝히는 분석도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의 생각에, 고기는 몸에 이롭다는 담론에서 출발한 목적 그 자체다. 고기를 얻으려는 수단으로서 폭력은 정당하게 은폐된다. 그렇게 ‘스테이크=남성문화=힘/샐러드=여성성=거세됨’이란 등식을 완성한다. 남성에게 고기가 필요하다는 건 미신이며 남성 신화라는 얘기다. 그리고 “육식은 습관이며, 관성은 변화에 저항한다”는 충고를 잊지 않는다. 그의 신조는 “쌀을 먹는 것이 여성에 대한 믿음”이라는 싯귀라고 한다. 단, 쌀을 주로 먹는 문화권에서 그의 신념을 수정 없이 적용하긴 어렵겠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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