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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고전다시읽기] 파괴의 길 멈추고 갈랫길로 돌아가자/박혜영

등록 2006-07-13 19:59수정 2006-07-14 17:05

유려하고 문학적인 글로 과학을 대중화하는 데 앞장섰던 레이첼 카슨은 화려한 직함은 없었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시대를 꿰뚫는 문제의식으로 20세기 세계인들의 인식을 바꾼 중요한 책을 썼다. 카슨이 인생 후반부를 바친 책 <침묵의 봄>은 환경파괴의 위험성을 경고해 세상을 뒤흔들었다.
유려하고 문학적인 글로 과학을 대중화하는 데 앞장섰던 레이첼 카슨은 화려한 직함은 없었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시대를 꿰뚫는 문제의식으로 20세기 세계인들의 인식을 바꾼 중요한 책을 썼다. 카슨이 인생 후반부를 바친 책 <침묵의 봄>은 환경파괴의 위험성을 경고해 세상을 뒤흔들었다.
살충제에 땅이 오염되고 나무가 시들고 새가 오지 않는
이제껏 우리가 달려온 길의 끝이 ‘침묵의 봄’이라면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의 끝은 ‘지구의 보존’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시인 과학자의 경고
고전 다시읽기/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 모두 갈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한 사람의 여행자가 되어 오래 서성거리며, 한 쪽 길이 덤불속으로 감돌아간 데까지, 가능한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어쩌면 더 나을 지도 모를 길을…”

로버트 프로스트는 삶이란 숲으로 난 두 갈래 길 가운데 어느 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가지 못한 첫 번째 길을 아쉬워하며 다음 날을 위해 이 길을 남겨두지만, 길은 언제나 또 다른 길로 이어지기에 누구나 처음으로 다시 돌아오기는 어렵다. 그저 자기가 선택한 길이 더 나은 길이길 바라며 숲으로 계속 걸어 들어갈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 모든 것은 달라진다.

삶은 두갈래 길 중 하나 선택하는 것


1962년에 출간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인류가 숲으로 난 두 갈래 길 가운데 어떤 길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 모든 것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마치 시인처럼 읊은 책이다. 카슨은 인류가 ‘성장’과 ‘개발’이라는 인간만을 위한 이기적인 길을 선택함으로써 자연에게 무슨 짓을 하게 되었는지 들려준다. 비록 카슨은 화학적 방제로 해충을 박멸하려던 인간의 이기심이 얼마나 자연생태계를 교란시키게 되었는지를 주로 조사했지만 그녀가 들려주는 우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인류가 택한 길이 결국은 자기들이 사는 땅을 오염시키고, 나무들을 시들게 하고, 지저귀던 새들마저 떠나게 함으로써 마침내 ‘침묵의 봄’을 불러올 것임을 예언하였다. 나비가 없으니 꽃도 피지 않고, 새들이 없으니 봄도 오지 않는 그런 죽음의 적막만이 가득한 인류의 미래를 말이다.

카슨은 원래 시인을 꿈꾸었던 문학도였다. 펜실베이니아 주의 스프링데일이라는 목가적인 고장에서 태어난 그녀는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던 중 생물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생물학 석사과정을 마치게 된다. 카슨은 1930년대에 미국 전역을 휩쓴 경제공황과 여성과학자에 대한 과학계의 편견으로 박사과정을 중단한 뒤 대가족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해양과학에 관한 대중적인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새소리가 사라진 자신의 정원에 관한 한 여성의 편지를 받고, 마침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합성화학 살충제의 폐해를 파헤치게 되었다. 오랜 조사과정을 거쳐 4년 만에 완성된 <침묵의 봄>은 발간 즉시 높은 대중적인 호응을 얻음으로써 무차별적인 살충제 사용에 관한 반성과 화학산업계의 거센 반발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과학적인 자료조사와 서정적인 문체로 DDT를 비롯한 화학살충제의 생태계 파괴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침묵의 봄》은 생태학의 고전으로 널리 애독되게 되었다.

무엇보다 카슨의 남다른 점은 전체를 볼 줄 아는 그녀의 시적 상상력에 있다. 그녀는 미국 전역의 무차별적인 디디티(DDT) 방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지맞는 시장이 필요했던 화학산업계와 기업과 연결된 미국농무부와 같은 정부관료들, 또 기업과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은 과학자들 간의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결탁이었음을 너무도 예리하게 파악하였다. 뿐만 아니라 특정 식물이나 곤충을 박멸하기위해 뿌려대는 살충제가 ‘전문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특정 생물에게만 작용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 독성물질이 토양과 지하수로 스며들어가 물고기와 곤충, 새들과 인간에게로 순환하며 지구생태계 전체를 파괴시킨다는 것도 볼 줄 알았다. 지금도 생태보호 운운하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빨갱이’라고 일부신문에서 몰아세우는 데, 40년이나 전에, 그것도 기업발전으로 풍요로운 미국건설에 여념이 없던 냉전적 상황에서, 더구나 남성중심 과학계의 차별적 분위기 속에서 한 여성의 몸으로 그토록 용기 있게 주류세력들과 맞섰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냉전·성차별 사회 맞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초고.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초고.
카슨에 따르면 인간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새들이나 주부들은 알아도 소위 ‘전문가’들은 모른다. 1950년대 화학영농법이 미국사회의 폭넓은 공감대를 얻을 때 한 과학자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기고한 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새로운 비료, 살충제, 살균제, 제초제, 고엽제, 토양 촉진제, 식물호르몬, 무기염류, 항생제, 돼지를 위한 합성우유 등으로 지금 영농에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이젠 이 모든 게 다 발암물질로 드러났다. 게다가 미국공중위생국의 독극물학자였던 웨일런드 해이스는 죄수들 가운데 51명의 자원자를 받아 DDT를 뿌린 음식을 먹이는 생체실험까지 감행하였다. 그러나 과학자들과 달리 앨라배마에 살던 한 평범한 주부는 ‘진보’의 이름으로 인류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 차렸다. 미국연방정부가 불개미 퇴치를 위해 대규모 살충제를 뿌리자 이 여성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왔다. “반세기가 지나도록 제가 사는 마을은 말 그대로 조류보호구역이었습니다. 그런데 8월 둘째 주부터 그 많던 새들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아끼는 암말과 망아지를 돌보기 위해 일찍 일어난 어느 날 아침 저는 지저귀는 새를 단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기괴하고 두렵기까지 한 일이었습니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이 세상에 도대체 인간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일까요?”

너무 늦어 돌아가지 못하기 전에

카슨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서양문명은 근대에 접어든 이후 자연자원을 착취하는 데 몰두해왔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 무자비하게 지구를 훼손하고 파괴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겨야 할 대상은 자연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성숙한 눈으로 자연과 우주를 바라볼 수 있도록 먼저 우리 스스로의 문제를 깨달아야 합니다.” <침묵의 봄> 마지막 장에서 카슨은 우리에게 두 갈래 길이 놓여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 온 길은 편하고 반반한 고속도로로 우리는 그 위를 달리며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지만 그 끝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길은 아직 우리가 많이 가보지 못한 길로 지구의 보존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자 마지막 남은 길이다. 그리고 이제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한다.

박혜영/인하대 교수·영문학
박혜영/인하대 교수·영문학
돌아보면 올 해 들어 더욱 맑은 하늘을 보기 어려워졌다. 봄이 와도 주택가에서건, 캠퍼스에서건 새소리를 듣기 어렵다. 동물도 애완용이 아닌 다음에는 모두 동물원에 있고, 식물도 관상용 화초가 아닌 다음엔 모두 식물원에 모여 있다. 화분을 키우고, 강아지를 키우듯이 그저 자연을 돌본다면 이것도 애완용 자연일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땅과 물과 하늘을 온전하게 지키는 것, 그것보다 더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과학적인 일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왜냐하면 동물들이 사라지고, 새들이 노래하지 않게 되고서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겐 달리던 길을 멈추고 다시 맨 처음의 두 갈래 길로 되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는 것보다 더 절실하고 절박한 문제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에게 맡겨두지 말고 우리 각자가 지금까지 무슨 짓이 저질러졌는지 똑바로 알아야 한다. 너무 늦어 다시 돌아가기 어렵게 되기 전에 말이다.

박혜영/인하대 교수·영문학

서평자 추천 도서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2002)

다른 번역본들이 모두 절판된 상태라 구하기 쉬운 유일한 번역본임. 다만 레이첼 카슨과 같은 환경주의자들의 논리를 맹렬하게 비판한 비외른 롬보르의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번역했던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의 감수가 왜 <침묵의 봄>에 따라 붙었는지 그 이유를 출판사가 밝히지 않고 있어 독자들을 의아하게 만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음

세계를 뒤흔든 침묵의 봄

알렉스 맥길리브레이 지음, 이충호 옮김

그린비 펴냄(2004)

<침묵의 봄>의 집필배경과 당시의 시대상황, 후대에 끼친 영향까지 생생한 화보와 함께 자세한 설명을 담은 책으로 카슨 이해에 도움을 줌

레이첼 카슨 평전

린다 리어 지음, 김홍옥 옮김

샨티 펴냄(2004)

카슨의 전기작가였던 린다 리어의 책으로 경제적 어려움과 암투병으로 고생하던 개인사에서부터 과학계의 여성으로서의 어려움에 이르기까지 카슨 일대에 관한 꼼꼼한 자료조사와 서정적 문체가 돋보이는 평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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