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림열전 1-소쇄원의 바람소리
이종범 지음. 아침이슬 펴냄. 값 1만3000원
이종범 지음. 아침이슬 펴냄. 값 1만3000원
잠깐독서
‘사림(士林)’. 짧은 역사 지식에다 사극을 너무 많이 본 탓인지, ‘선비’에서 느껴지는 ‘호감’과 달리 일단 ‘비호감’이다. 피비린내 나는 정쟁과 사화, 파당 정치 등등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책장을 열게 되는 건 ‘역사에서 숨겨진 큰 인물들’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서다.
제주도 풍랑기 <표해록>의 저자이자 ‘계백론’으로 패장을 충신으로 되살려낸 최부, <동국사략>을 편찬하고 <매월당집>을 기초한 박상, 즉위 7개월만에 붕어한 인종의 세자시절 스승이었던 김인후, 을사사화로 파직돼 20년의 유배기를 적은 ‘조선시대 일기의 백미’ <미암일기>를 남긴 유희춘, 퇴계 이황과 편지 논쟁을 시작해 ‘사단칠정논변’을 낳게한 기대승, 윤원형 세도를 무너뜨리고 ‘사림재상’으로 활약한 박순, ‘정여립과 친하다’는 이유로 멸문의 화를 당한 이발, 거침없는 왕정 비판으로 찍혀 희생당한 ‘처사형 사림’ 정개청. 몇몇은 들어본 듯도 한데 아무래도 낯선 이름들이다. 어떤 기준이나 공통점으로 발굴됐을까? 우선 모두 16세기, 그러니까 조선 중기를 살았다. 나주, 광주, 해남, 장성 등 호남에서 태어났다. 당대 재상까지 오른 인물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유배나 참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쯤에서 현재 조선대학교 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지은이의 설명을 듣지 않을 수 없다. “몇 해 전 호남·충청·경상도를 넘나들며 ‘역사문화인물기행’을 이끌면서 오늘날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학문과 사상, 언론과 교류의 기풍이 16세기부터 자리잡았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앞으로 ‘김종직, 남효온, 김굉필, 김일손, 김안국, 노수신, 김정’ 등이 등장하는 2권과, ‘이황, 서경덕, 조식, 이언적, 이이’ 등 당대 최고 지성들을 담은 3권을 통해 ‘조선 선비의 숲’ 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16세기가 세조와 연산군이 남긴 폭정 후유증이 빚어낸 사화의 시대였으나, 그럼에도 올곧은 정신과 깊은 학문으로 무장한 선비들이 정국을 주도한 사림의 시대였다’고 규정한 시각도 새롭고, 꼼꼼한 사료 읽기와 현장 발품으로 동시대 선비들의 교류 내력까지 밝혀낸 정성이 대단하다. 그 덕분에 어릴 적 나주에서 소풍다녔던 그 많은 향교의 원주인들을 알게된 개인적 소득도 반갑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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