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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여성스런 남자, 남성스런 여자 아름다워라!

등록 2006-07-20 20:02수정 2006-07-21 16:25

꽃미남과 여전사 1·2<br>
이명옥 지음. 노마드북스 펴냄. 각권 1만2500원
꽃미남과 여전사 1·2
이명옥 지음. 노마드북스 펴냄. 각권 1만2500원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의 ‘섹슈얼리티로 문화예술 보기’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은 결국 ‘양성성’에 가닿아”
다빈치의 ‘모나리자’·성서 속 천사·관음보살이 대표적
갈색이 번져 황금색으로 물든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빛이 은은하다. 곱슬머리의 긴 윤곽이 아담한 어깨선으로 번진다. 그녀는 봉곳 솟아오르려는 작은 가슴을 한 손으로 넌지시 가리고 다른 손을 치켜 든다. “이 아름다움 앞에 네까짓 것들이 견딜쏘냐” 하며 오만하면서도 고혹적인 미소를 흘린다.

아니, 잠깐. 그녀는 남자다. 그녀, 아니 그가 캔버스 이쪽 편의 우리에게 전하는 건 유혹이 아니라 복음이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둠 속 저편에 십자가가 있다. 그림 제목은 <세례자 요한>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생의 마지막에 완성한 그림이다. 피골이 상접한 들판의 예언자로 등장해야 마땅한 요한을 다 빈치는 어쩌자고 이토록 ‘아름답게’ 그렸을까. 이 그림을 보고 마음에 앞서 몸이 먼저 동하는 건, 신성모독일까.

사비나 미술관장인 이명옥은 그런 이들을 토닥인다. 아름다움에 대한 궁극의 갈망은 결국 ‘양성성’(兩性性)에 가닿는 것이라고 속삭인다. 동서고금의 모든 이가 실은 그러했다고 말한다. <꽃미남과 여전사>는 섹슈얼리티의 극한에서 미(美)의 절정을 길어올린 인류의 문화예술사를 담은 책이다. 남자의 몸에서 여성성을 찾고 여성의 몸에 남성성을 덧씌우며, 마음 깊은 곳에 극한의 아름다움을 환상으로 쌓아올린 이야기들이다.

섹슈얼리티를 화두 삼아 미술, 특히 서양 미술을 톺아보는 책은 적지 않다. 따지고 보면 섹슈얼리티를 빼고 예술을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양성성’을 고리 삼아 그 세계를 다시 들여다보는 맛은 새롭다. 지은이의 표현을 빌자면 “남자에게 여성이 여자에게 남성이 ‘빙의’”된 세계다.

‘아니마·아니무스’ 융의 개념 차용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에 등장한 인물을 통해 남성성과 여성성을 비틀어 교차시켰다. 왼쪽은 여성성을 연상시키는 자태를 지닌 젊은 남성 노예, 오른쪽은 남성의 근육질을 가진 여성 예언자 시빌을 묘사한 부분 그림이다. 노마드북스 제공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에 등장한 인물을 통해 남성성과 여성성을 비틀어 교차시켰다. 왼쪽은 여성성을 연상시키는 자태를 지닌 젊은 남성 노예, 오른쪽은 남성의 근육질을 가진 여성 예언자 시빌을 묘사한 부분 그림이다. 노마드북스 제공
신화와 성경의 장면을 재현한 서양 회화 및 조각들이 왜 그리 낯선 동시에 관능적이었는지 이 책을 읽고서야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본능 깊이에 자리한 섹슈얼리티는 남성적인 여성과 여성적인 남성을 동경했던 것이다. 그들이 빚어낸 아름다운 남성과 아름다운 여성은 서로를 닮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사랑했던 것으로 ‘의심’되는 미켈란젤로는 남자의 몸을 여성적으로, 여자의 몸을 남성적으로 그리거나 조각했다. 그것은 낯설지만 강렬해서 더욱 치명적인 유혹이다. 다빈치가 후대에 남긴 영원한 수수께끼인 모나리자의 미소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모나리자는 다빈치의 남성성을 투사한 여성이었던 것이다.

칼 구스타프 융은 그 심리를 ‘아니마’와 ‘아니무스’로 설명했다. 인간은 자신에게 부족한 반대 성을 보충해 영혼의 균형을 취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남성 내부의 여성성이 아니마, 여성 내부의 남성성이 아니무스다. 지은이는 융의 개념을 빌려와 문화예술의 동서와 고금을 가로지른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합일시키려는 인류의 환상은 때와 장소를 가려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지은이는 “신화, 종교, 예술에 나타난 인간의 원형은 남녀양성”이라고 말한다. 그 갈망을 구현한 것이 ‘자웅동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인 <세례자 요한>. 다빈치는 세례자 요한을 여성적 매력이 넘치는 이로 묘사했다. 그 미소는 모나리자와 닮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인 <세례자 요한>. 다빈치는 세례자 요한을 여성적 매력이 넘치는 이로 묘사했다. 그 미소는 모나리자와 닮았다.
자웅동체에 대한 그리움은 모든 종류의 신화에 녹아 있다. 여성의 젖가슴과 남성의 성기를 지닌 동양·서양의 고대신들은 “완전한 인간이 되고 싶은 욕구와 갈망”을 표상하는 것이었다. 가브리엘, 미가엘, 라파엘 등 성서에 등장하는 천사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그래서 남성일수도 여성일수도 있는 존재였다. 백제의 반가사유상의 미소로 대표되는 관음보살도 여성성과 남성성의 경계에서 중생을 구제한다. 중국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복희와 여와는 한 몸을 지닌 남매였다.

인간은 이를 신화와 예술 속에서만 빚어올리지 않았다. 대담하게도 그들은 자웅동체의 꿈을 현실에 옮겨 담았다. 남장 여성, 여장 남성이 대표적이다. 북미 인디언 나바호족은 여장 남자 ‘베르다체’를 흠모하고 샤먼으로 숭배했다. 일본 가부키의 여장 남자 배우 ‘온나가타’도 빼놓을 수 없다.

아무래도 이 책의 백미는 고대 그리스, 르네상스, 현대의 대표적 미술작품을 통해 양성성의 아름다움을 탐색하는 대목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폴론 조각, 르네상스의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와 카라바조, 19세기 데카당스 미학을 대표하는 모로와 비어즐리, 20세기 초현실주의 여성화가 피니와 바로 등이 대표적이다.

메트로·콘트라섹슈얼 아이콘도 정리

지은이는 미술에 대한 감각을 문명사 전체로 넓히는 시도도 하고 있다. 여성처럼 아름다운 메트로섹슈얼과 남성처럼 강한 콘트라섹슈얼의 아이콘을 정리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꽃미남 가니메데스부터 코르셋을 입고 몸매를 가꿨던 영화배우 루돌프 발렌티노, 여성들의 영원한 우상이 된 제임스 딘과 엘비스 프레슬리 등이 메트로섹슈얼을 대표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아테나, 아마존 여전사, 고대 이집트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 근대 여류 소설가 조르주 상드, 현대 대중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마돈나 등이 콘트로섹슈얼의 상징이다.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미술사에 더 집중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것이다.무엇보다 남성의 몸에서 여성성을 건져올린 미술사의 자취에 비해, 여성의 몸에서 남성성을 찾으려는 흔적이 많이 드러나지 않아 안타깝다. 이는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아름다움에 대한 탐닉이 주로 남성의 몫이었음을 방증하는 일이기도 하다. 남자들은 여성성을 동경하면서도 남성의 몸에서 아름다움의 절정을 궁구했다. 여성과 야만인을 동격에 놓았던 시절의 일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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