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동포 ‘유랑 삶’에 충격
탈북 어린이 꿈 듣고 집필 결심
어른과 함께 보며 고민했으면
탈북 어린이 꿈 듣고 집필 결심
어른과 함께 보며 고민했으면
5년만에 ‘돌이와 장수매’ 펴낸 동화작가 류재수씨
〈노란 우산〉으로 2002년 뉴욕타임스에서 ‘올해의 우수 그림책’에 뽑힌 동화작가 류재수(54·사진)씨가 5년간의 은둔을 털고 돌아왔다.
이번에 들고 나타난 작품은 〈돌이와 장수매〉. 일본에서 출간돼 무대극으로까지 공연된 전작 〈백두산 이야기〉가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얘기라면 이번 작품은 이산가족의 그리움과 희망에 대한 얘기다. 고기잡이 나갔다 해적 떼에게 끌려가 돌아오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있는 돌이가 꿈속에서 본 장수매를 실제로 만나 희망을 키운다는 내용이다.
“1992년 사할린에서 만난 고려인들의 충격적인 삶”이 집필동기. 팔순 이산가족의 애환을 목격하면서 이산가족의 그리움과 희망을 그리고 싶었단다. 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작업을 함부로 할 수 없다며 중간에 그만뒀다. 그러다 4년 전 혈혈단신으로 넘어온 탈북 아이의 꿈이 유일한 혈육인 누나와 다시 만나 단란하게 사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뒤 작업 재개를 결심했다.
“책의 핵심은 ‘희망’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죠. 그렇다고 희망을 아주 거창하게 나타내고 싶진 않았습니다. 가족이 다시 만나는 순박하고 본원적인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어디서나 만나는 평범한 아이인 ‘돌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이런 바람에서다. 아울러 바닷가 작은 마을을 무대로 잡아 서정적인 분위기의 그림으로 담아낸 것은 〈돌이와 장수매〉가 단순히 과거 회상이 아닌 현재의 우리 일상 모습을 형상화한 것임을 말해준다. 그런 점에서 한 소년이 겪는 이별과 그리움, 희망을 통해 사회공동체의 최소단위인 가족의 의미와 소중함이 저절로 드러나도록 하고, 나아가서는 갈라진 민족이 하나됨을 염원하는 우리의 소망이 얼마나 소박하고 순결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작가의 재주가 대단하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 어렵고 무거운 주제를 담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 “우리나라 그림책 문화가 지나치게 시대 순응 이데올로기를 따르고 있다”고 그는 비판한다. 원래 그림책은 아이와 어른이 같이 보는 것이었는데, 상업화되면서 그저 예쁘게 포장만 잘된 그림책이 대세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에게도 어른과 똑같이 시대의 양면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돌이와 장수매〉는 기법면에서 무척 낯설다. 그림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곱고 화사한 원색은 보이지 않는다. 색채는 극도로 절제돼 있고, 갈색 계열의 단색조가 무겁고 고전주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에 대해서도 그는 “어린이의 무한한 상상력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그 상상력을 가둬두고 있는 현실에 저항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상당수 그림책이 기능, 기술 중심주의에 매몰돼 있는데 이제는 아이들에게 미학적으로 다양한 그림책을 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신문사/1만8천원.
글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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