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환경의 문명사
데이비드 아널드 지음. 서미석 옮김. 한길 HISTORIA 펴냄. 1만5000원
데이비드 아널드 지음. 서미석 옮김. 한길 HISTORIA 펴냄. 1만5000원
잠깐독서
세계가 목격한 최악의 대학살은 무엇일까? 당연 유대인 대학살이 떠오르겠지만 틀렸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아메리카 원주민 대학살이다. 코르테스가 아스텍 제국을 침입한 지 15년도 안돼 중부 멕시코 인구가 2500만명에서 100만명으로 급감했다는 일례만 봐도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서구제국주의의 대변인이 아닐까’ 의심이 들지만 일단 귀를 열어보자. 원정대는 전염병이라는 ‘생물학적 동맹군’을 동반했고 면역력이 없는 수많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들의 총칼이 아니라 천연두의 공격에 스러졌다는 게 요지다. 역사를 ‘생물학적 결정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침략자 코르테스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
런던 출신의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아널드는 이러한 ‘환경결정론 패러다임’이 역사를 설명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이러한 자연관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다양한 저술을 훑으며 <인간과 환경의 문명사>를 정리했다. 서구의 역사학자들이 ‘환경’이라는 프리즘을 문명인과 야만인, 동양과 서양, 온대와 열대 등 이분법적 우월을 가리는 도구로 이용했음을 오롯이 보여준다.
이 책은 몽테스키외의 ‘환경결정론’, 다윈 이후의 ‘인종결정론’을 비롯한 토인비의 ‘문명론’, 터너의 ‘경계 논제’, 맬서스의 ‘인구론’ 등 환경결정론 사상과 연관된 수많은 견해를 소개한다. 그중 가장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으로 맬서스와 다윈을 꼽는다. 14세기초 흑사병이 인구 과잉이었던 유럽에 대한 맬서스식 제지였고 이는 다른 대륙의 식민화 과정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고 전제한다. 노예무역에 대해선 흑사병으로 인한 잃어버린 노동력을 메우려 생겨났다는 생태학적 고리로 설명함으로써 노예사냥의 도덕적 책임을 희석시킨다. 게다가 다윈까지 결합되면 노예에 적합한 인종(흑인)과 생물학적으로 취약하여 소멸할 수 밖에 없는 인종(아메리카 원주민)과 정복과 착취에 적합한 제3의 인종(백인)이 따로 있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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