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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일본 사람들아, 침·략·전·쟁 네 글자를 가슴에 새겨라

등록 2006-08-10 20:27수정 2006-08-11 14:51

침략전쟁 <br>
고케쓰 아쓰시 지음. 박인식·박현주 옮김. 범우 펴냄. 1만원
침략전쟁
고케쓰 아쓰시 지음. 박인식·박현주 옮김. 범우 펴냄. 1만원
고이즈미 신사참배 위헌 이끈 고케쓰
최근 번역된 ‘침략전쟁’서 잘못된 역사인식 규탄
순국전쟁·해방전쟁·자위전쟁이라며
가해 사실조차 지우려는 자국민에 일침
전쟁책임 천황 겨누자 “매국노”라 매도당해
커버스토리

또 ‘8·15 광복’이 다가왔다. 벌써 61번째를 맞지만 한-일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민족들간에는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긴장이 여전히 존재한다. 아니, 세월이 갈수록 오히려 증폭되는 감마저 있다. 이렇게 꼬여가는 사태의 근저에는 일본, 특히 그 지배세력의 왜곡된 역사인식과 뒤틀린 심리가 깔려 있다는 게 외부자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일본 내부의 연구자는 이를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2003년 후쿠오카 지방재판소에서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아내는데 동참한 고케쓰 아쓰시 야마구치대 교수의 최근 저서를 통해 이를 살펴본다.(편집자주)

일본은 패전이라는 표현을 싫어한다. 그래서 우리의 광복절을 일본에서는 ‘종전기념일’이라 부른다. 며칠 남지 않은 8·15까지 한·일 양국의 최대 현안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문제가 될 듯싶다. 총리로서 마지막 해를 맞이한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그 후임자로 유력시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 두 사람 모두 참배의 뜻을 접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아시아·태평양전쟁을 감행한 장본인인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14인의 A급 전범을 ‘쇼와(昭和) 순국선열’로 모시고 있다. 이에 대한 공식참배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긍정하는 행위라 하여 우리는 물론 중국도 강력히 반대해 왔다.

일본 내에서는 ‘국가 및 그 기관은 종교교육과 그 외 어떠한 종교적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일본국 헌법 제20조)는 정교분리의 원칙에 반하는 위헌행위라 하여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 이유로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의 야스쿠니 공식참배는 이미 위헌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총리는 취임 첫 해인 2001년의 8월13일을 시작으로 매년 한 차례씩 어김없이 야스쿠니를 공식참배하고 있다. 참배 예찬론자들은 ‘종전기념일’인 8월15일을 피해 이루어진 비겁한 행위라고 오히려 비난했지만, 후쿠오카 지방법원은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 행위에 대해서도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에 반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현직 총리의 참배에 대한 최초의 위헌판결로 기록되었다.

이 판결에 따르자면 일본 총리가 자국의 헌법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바로 이 후쿠오카 지방법원의 위헌판결을 이끌어 낸 사람이 <침략전쟁>(범우 펴냄)의 저자, 고케쓰 아쓰시 교수다. 저자는 ‘후쿠오카·야마구치 고이즈미 총리 야스쿠니 공식참배 위헌소송’에 감정(鑑定)증인으로 출석했다. 그 자리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 정신에 얼마나 반하는 행위인지, 또 그 행위가 아시아 국민들과의 공생이라는 목표에서 얼마나 일탈한 행위인지 상세히 증언했다. 당시의 증언내용은 <고이즈미 야스쿠니 신사 참배 위헌소송 의견서, 정신·사상동원 장치로서의 야스쿠니신사―역사를 넘은 정치적 역할과 위헌성을 둘러싸고>라는 책자로 정리돼 후쿠오카 지방법원에 제출되었다.

군국 일본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한 1937년 12월 일본군이 중국인 포로들을 트럭에 무더기로 태우고 있다. 1931년 만주침략 이래 45년 패전 때까지의 이른바 ‘15년 전쟁’기간에 일본군의 무자비한 살륙으로 2천만 이상의 중국인들이 희생당했다. 범우출판사 제공
군국 일본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한 1937년 12월 일본군이 중국인 포로들을 트럭에 무더기로 태우고 있다. 1931년 만주침략 이래 45년 패전 때까지의 이른바 ‘15년 전쟁’기간에 일본군의 무자비한 살륙으로 2천만 이상의 중국인들이 희생당했다. 범우출판사 제공
저자는 근현대 일본의 정치군사론 연구의 일인자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관련 저서만 해도 20여권에 이르는, 학계 이론가로서 뿐만 아니라 평화운동가로서도 왕성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난징 대학살 사건의 현지조사를 시작으로 한국·중국·대만·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아시아 각지에서 일본군의 학살 사례를 조사하며, 아시아 국가들의 역사인식 공유화를 모색하고 있다.


야스쿠니 공식참배는 물론 평화헌법 개정, 군비 증강, 역사교과서 개악, 독도 도발 등 ‘1억 총 보수화’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심각한 일본사회의 우경화 경향은 주변국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전에는 주변국의 우려에 체면치레 정도의 반응이라도 보였으나 이제는 오로지 제 갈 길을 가기로 작심한 듯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면 부정하고, 주변국의 충고는 아예 무시하고 야스쿠니를 공식참배하거나 역사교과서를 왜곡한다. 한-일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일본의 양심 세력에 기대를 걸었지만 갈수록 그들이 설 자리도 협소해 보인다.

<침략전쟁>은 도를 더해가는 일본인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규탄하기 위한 역사평론이다. 나치즘이 저지른 죄를 절대적인 악에서 상대적인 악으로 격하시킨 역사수정주의가 최근 십 수년 동안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다. 그들은 자유주의사관이라는 미명하에 일본의 과거 역사를 왜곡·은폐하고 있다. 이들은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침략전쟁으로 보지 않고, 소위 ‘자위전쟁(미국, 영국, 네덜란드의 대일 경제봉쇄에 대항하기 위해 불가피했던 전쟁)’, ‘아시아 해방전쟁(미국과 영국 등 열강의 식민지화한 아시아 국가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 ‘순국전쟁(천황 폐하를 위한 성전에 돌입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쟁)’등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일본 정치군사론 일인자

돌이켜 보면 야스쿠니 공식참배를 둘러싼 일본 정부 및 국민여론의 배경에도 침략전쟁을 부인하려는 역사관이 자리잡고 있다.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야스쿠니에 합사되어 있는 A급 전범을 연합군의 일방적인 재판으로 전쟁범죄의 누명을 쓰고 희생당한 역사의 피해자로 선전하며 침략전쟁을 일으킨 전쟁책임을 전면 부인한다. 이런 야스쿠니 신사를 수상이 참배하는 것은 일본 정부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있음을 내외에 공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커버스토리/침략전쟁
커버스토리/침략전쟁
저자는 이러한 역사인식이야말로 명백히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무책임한 자세라고 비판을 가한다. 또한 일본의 침략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가해와 피해의 주체를 명확히 해 나갈 것을 촉구한다. 그래서 저자는 “일본 국민들은 과거의 역사를 침략전쟁이라는 4글자로 마음에 새겨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민들과의 우정과 공생의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본서는 청일전쟁에서 아시아·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본을 관철해 온 침략사상의 전형을 메이지 초기의 정한론을 둘러싼 권력쟁탈전에서 찾고 있다. 당시 사이고 다카모리는 메이지 정부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한국 정벌이라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었다. 이처럼 일본은 국내의 여러 가지 모순을 해소하는 수단으로서 항상 대외 위협론을 부추겨 위기상황을 설정한다는 예리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거기에서는 상대의 질이나 실태는 반드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컨대, 위기를 설정하는 쪽인 일본인 혹은 일본정부에 의한 자기 본위의 침략사상이 재생산되는 구조와 체질이 강하게 몸에 배었다는 것이다. 타민족이나 타국에 대한 모멸의식을 철저히 내면화시키며 국가 에고이즘을 노골화 한 이러한 침략사상이 ‘아시아연대론’, ‘동아연맹론’, 환상공동체로서의 ‘대동아공영권’ 사상으로 발전해갔으며, 심지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며 그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침략전쟁으로 인식한다면 전쟁책임의 소재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천황은 전쟁지속 노선과 전쟁종결 노선 사이에서 계속 흔들리고 실제로 그 이후 ‘포츠담선언’ 수락을 단행하기까지 약 반년 가까이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천황은 …국체호지(천황제 유지-서평자 주)에 대한 이상할 정도의 집착심의 결과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 시간이 경과하는 사이에 도쿄 대공습이나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를 초래하고, 더욱이 소련참전에 의한 ‘중국 잔류고아’와 ‘시베리아 억류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며,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반복해서 생각할 때 천황의 전쟁책임은 지극히 무겁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침략사상의 근원도 파고들어

본서 출간 이후 저자는 일본의 보수우익과 역사수정주의자들에게 일본을 팔아먹는 매국노로 간주되어 인터넷 선상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감히 천황의 전쟁책임을 거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책임에 관한 부분은 보다 구체화, 체계화될 필요가 있다. 저자가 밝히듯이 “…많은 일본인들이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침략전쟁 혹은 극히 침략성이 높은 전쟁이라는 인식을 품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동시에 전쟁책임이나 가해책임의 문제로까지 의식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분명하다. 즉, 일본인의 전쟁인식이 여전히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침략전쟁에 대한 부정론자들의 중요한 목표물이 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서의 한국어 번역은 이런 점에서도 의의를 가진다. 일본 내에서 스스로 해결해 나가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서로의 연구 성과를 교환하고 공동연구를 진행시킬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번역서가 한국사회에서도 값진 업적으로 인정받아 한국과 일본의 우정이 역사를 초월해 한층 깊어지는 매개체가 되길 바란다.

박용구/한국외국어대 일본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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