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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비운’의 삼손은 오늘날 이스라엘?

등록 2006-08-17 17:45수정 2006-08-18 14:24

사자의 꿀<br>
데이비드 그로스먼 지음.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펴냄. 8800원
사자의 꿀
데이비드 그로스먼 지음.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펴냄. 8800원
성경 구약 속의 영웅 삼손은 사랑과 배신의 개인적 드라마를 민족의 수난과 영광이라는 집단 서사로 끌어올린 ‘문제적 인물’이다. 사랑하는 여인 들릴라의 배신으로 원수인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힌 그가 마지막으로 초인적 힘을 발휘해 수많은 적들과 함께 죽어 가는 장면은 성경 속의 숱한 이야기들 중에서도 비장미에 있어 가히 일품이라 할 만하다.

이스라엘 작가 데이비드 그로스먼(52)의 <사자의 꿀>은 삼손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영국 캐넌게이트 출판사가 한국의 문학동네를 비롯해 전 세계 유수의 출판사들과 함께 펴내고 있는 ‘세계신화총서’의 다섯 번째 권으로 나왔다.

삼손(과 들릴라)의 이야기는 그동안 그림과 음악, 소설, 영화 등으로 다양하게 재조명되어 왔다. 생상의 오페라와 세실 드밀 감독의 1949년 영화가 대표적이다. <사자의 꿀>은 삼손을 영웅적 운명과 인간적 고독 사이에서 방황하고 몸부림치며 살다 간 비운의 주인공으로 부각시킨다. 그로스먼은 책 머리에 구약 <사사기> 중 삼손을 다룬 13~16장을 전재한 뒤 그 이야기를 논평을 곁들여 ‘다시 쓴다.’ ‘다시 쓰기’(re-writing)란 ‘세계신화총서’의 기본 방향이기도 한데, 인류 전체의 자산으로 등재된 잘 알려진 이야기를, 그 뼈대를 유지하면서도 작가 나름의 독창적인 관점을 가미해 새롭게 구성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그로스먼의 삼손 다시 쓰기는 성경이 생략하고 있는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의 동기를 파악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자식을 마침내 얻게 됐지만 그 아이가 온전히 자신들의 아이가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에 맡겨져 있는 ‘낯선 존재’임을 알게 된 부모의 착잡한 심사, 블레셋 사람들을 죽일 때에도 애써 독창적이고 탐미적인 장치를 고안해 내는 삼손의 예술가적 기질, 블레셋 사람들의 협박과 돈의 유혹 때문이라기보다는 삼손을 상대로 자신의 성적 매력을 확인하고 싶었던 들릴라의 조급한 충동 등등.

그러나 <사자의 꿀>의 진정한 독창성은 삼손과 오늘날의 이스라엘을 등치시키는 발상에 있다. 스스로도 어찌하지 못할 만큼 엄청난 힘의 소유자로서 그 힘을 과도하게 사용하면서 더욱 더 고독해지고 위험해져서 결국은 ‘자살 테러’로 생을 마감하고 만 삼손의 운명에서 ‘군사강국’ 이스라엘은 배울 바가 있다는 것이 작가의 전언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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